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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을 내려와 용현 갯골 유수지를 지나온 길은 신선초등학교 이후로도 계속 용현 갯골 수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한다. 시가지를 걸으며 수인선 숭의역과 신포역을 지난 길은 차이나타운과 송월동 동화마을을 거쳐 자유공원입구에서 코스를 마무리한다.

인천 신선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이곳에는 인도의 온도를 낮추어 주는 쿨링포그가 주기적으로 동작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동네를 도는 소독차 뒤의 연기를 쫓아다니던 기억을 떠 올리면 지금의 아이들도 쿨링포그를 재미있어할 것 같기는 하다. 다시금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 선진국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이름이 신선 초등학교인데, 이곳에 신선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길은 용현 갯골 수로를 따라서 계속 이어진다. 홍수를 대비한 공간이어서 그런지 지금은 아주 작은 물줄기만 졸졸 흐른다. 수로 옆으로 벚나무가 강렬한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이 이어진다. 적절한 나무 그늘과 벤치만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휴식 시간을 가진다. 폭염 속 걷기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원래의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아암대로를 가로질러 길 건너편에서 아암대로를 따라 올라가는 것인데,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길을 건너는 것보다는 이쪽 방향에서 계속 직진하는 것이 그늘이 많아 보였다. 그늘을 찾아가는 그늘 헌터가 된 것 인양, 어느 쪽에 그늘이 많을지 태양의 방향과 건물과 가로수를 가늠해 본다. ㅎㅎ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 내는 그늘, 가로수 그늘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중간에 경인 고속도로의 시발점이기도 한 인하대 병원 사거리를 지나는데 이곳에 육교가 있어서 서해랑길은 안전하게 인천대로를 건너라고 아암대로 건너편에서 길을 걷게 한 모양이다.


수인선 숭의역을 지나면 길을 건너온 원래의 서해랑길과 합류하여 제물량로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도로 이름이 제물량로인데 이곳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제물량은 제물포 보다는 생경스러운 이름이다. 그렇지만, 제물포라는 이름은 제물량이 설치된 포구를 이르는 말이고 제물량은 해안 방비와 조운선 호송을 맡은 수군의 진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광복 후에 미 군정에 의해서 약 보름 정도 인천시가 제물포시로 명명되었던 적도 있다고 하니, 제물포가 인천의 옛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길의 이름이 제물량로인 것처럼 서해랑길은 인천항을 바로 옆에 두고 걷는다.


신광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대로변이라 그런지 방음벽도 아주 높고 도로 안내판을 보니 일정 시간대에 화물차 통행금지 표지판도 있었다. 제1, 제2 경인 고속도로가 인근이라 그런 모양인데, 몇 년 전에 이곳 학생이 화물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길을 건너서 길을 이어가는데 대형 마트에 잠깐 들어가 몸을 식혔다가 길을 이어간다. 나무 그늘, 편의점 에어컨, 대형 마트 에어컨...... 폭염 속 걷기의 해방구들이다.


폭염 속 걷기의 첫날 일정은 신포역 앞에서 멈추고 이곳 숙소에서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다. 땀범벅인 빨래들을 해결하느라 조금 소동이 있었지만, 집에서 챙겨간 빨랫줄과 숙소 주인장의 탈수 도움으로 빨래는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빨래도 해결한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신포 국제 시장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신포는 개항 당시 새로운 포구라는 의미로 신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익숙했던 만두, 닭강정......


신포 거리를 걷다가 의외의 거리를 만났다. 청년 백범김구 역사거리를 만났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김구는 이곳에 있던 인천 감리서에서 옥고를 치르며 인천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백범의 어머니께서 옥바라지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의외의 장소에서 김구의 흔적을 만나니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진다. 해방 당시와 비교하면 나라는 부유해지고 민주화도 진행되었지만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나라를 팔아먹거나 개인의 영달만을 쫓던 무리를 따르는 이들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신포 국제 시장을 찾아서 이런저런 구경을 하는 재미도 좋았다.

시장에서 찾은 칼국수 집에서 칼제비로 저녁을 해결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가게 앞에 적어 놓은 가격과 내부 메뉴판의 가격이 달라서 조금은 실망이었다. 선불로 먼저 결제하는 것도 이 동네의 독특한 문화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아침 제물량로를 벗어나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정을 이어간다. 인천 중구청이 있는 방향이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한국근대문학관이 위치하고 있다.


길은 인천 개항장 거리로 이어진다. 초입에 세워진 조형물은 최초의 우편배달부와 그 당시의 우체통이라고 한다.

예전에 일본은행 지점이던 곳은 인천 개항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조계지는 보통 개항지에 설치되는 것으로 일정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통상하고 치외법권을 누리도록 설정한 지역을 말하는데, 인천 개항 당시 청나라의 조계지로 인천 차이나타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큰 차이가 있고 많은 경우는 대만 국적의 화교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짜장면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이른 아침이라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은 유혹은 가슴 아래에 있다.


차아나타운을 돌아가는 길에서는 경극을 소개하는 벽화도 만날 수 있었는데, 정기적인 경극 공연이 열리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경극을 소개하는 벽화 골목 아래로 내려가면 짜장면 박물관도 만날 수 있다.


화덕 만두 가게를 지나다 보니 연초에 다녀온 대만 여행의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우측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95코스 종점이지만 길은 차이나타운을 마저 걷고, 송월동 동화 마을을 돌아서 간다.

북성동 원조 자장면 거리라는 표식을 보니 이곳이 인천시 중구 북성동인 모양이다. 개항동으로도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자장면"과 "짜장면" 무엇이 맞을까? 쓸 때마다 움찔한데, 사실 모두 표준어라고 한다.


길은 송월동 동화 마을을 만나면서 자유 공원이 있는 응봉산 방향으로 방향을 잡는다. 송월동은 개항 당시만 해도 부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되자 2013년 고전 동화를 테마로 하여 마을을 단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순히 벽에 페인트칠 몇 개 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름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것인 인상적이었다. 교회 주차장은 고아의 방주로 꾸며 놓았다. 심지어 교회 주차장을 지역민들에 개방하고 있었다.


화단의 나무수국에 벌이 날아왔다. 나무수국도 보기와 다르게 꿀이 많은 밀원 식물이라고 한다.


동화하면 화려한 색도 빠질 수 없듯이 화려한 색을 가진 꽃들도 동화 마을과 너무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동화 그림의 색이 이야기와 주인공의 특징을 잘 살려 주는 것처럼 화려한 꽃들도 동화 마을의 분위기를 더 잘 살려주는 모양새다.


길은 이제 동화 마을을 뒤로하고 응봉산 아랫 자락을 따라서 자유 공원 입구로 향한다.


서해랑길 95코스의 끝자락은 초한지 벽화거리, 삼국지 벽화거리로 마무리된다. 어릴 적 삼국지를 좋아했던 아들을 데려다가 천천히 걸으며 실감 나는 벽화 그림과 함께 삼국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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