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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단군 신화나 박혁거세신화, 주몽신화 처럼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하여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한 책인것 같다.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선입견과 편견을 깨지 않고는 아무것도 내게는 무의미할 터인데,

마음을 열도록 미궁(미로)과 신화를 비교하여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신화를 대하는 태도로 "의미를 읽으려고 애씀"을 취하도록 화두를 던지고 있다. 


사실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라며 터부시해왔던 경향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난 다음 서구 문화 기저에 깔려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군 시절 의무부대 심볼 마크에 왜 뱀이 그려져 있을까? 의문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삽화의 태반이 누드 조각이나 누드 그림이었고, 내용 또한 성인이나 접할 만한 것이어서 조금 쑥스러운 독서였던 특이한 경험이었다.


몇가지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그노티 세아우론!"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다. 자신을 알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가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문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한 다음에는 그 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의 답을 모색하는 사람은 신화의 주인공,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의문만 제기할 뿐 그 답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은 신화의 조연, 자기가 사는 모듬살이의 조연에 머문다.

신화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구절은


하지만 무대가 어디인가? 신들이 놀던 신화의 세상이 아닌가? 신화는 이런 것을 수학적으로 셈하지 않는다. 셈할 필요도 없다. 티탄에 속하는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난다. 제우스 또한 공간 이동이 자유롭다. 만화의 세계가 그렇듯이, 신화의 세계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신화를 아는 일은 인간을 미리 아는 일이다. 신화가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스에 신전이 유달리 많은 까닭, 신들의 모습을 새긴 석상이 유난히 많은 까닭을 상상해 보라. 인간 이해의 열쇠가 신화라면 신화 이해의 열쇠는 무엇일까?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빗장을 풀지 않으면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구절


사랑이 남아 있다면 영원한 이별보다 더 큰 벌은 없을테니까....... 우리는 오로지 영원히 헤어져 있을 따름이오.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는 말을 알아 듣기가 그렇게 힘들던가요? 그래요. 의심이 자리잡은 그대 '프쉬케(마음)'에게 나 '에로스(사랑)'는 깃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소.



삶의 다양성, 시각의 다양성


"네가 대체 무슨 권능에 의지해서 산 몸으로 혼령의 나라를 다녀오겠다는 것이냐?"

"헤라클레스는 힘에 의지해서 산 몸으로 혼령의 나라를 다녀왔고,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의지해서 산 몸으로 혼령의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저승은 프쉬케가 사랑에 의지해서 다녀왔고,

시쉬포스가 꾀에 의지해서 다녀온 곳입니다. 저역시 사랑에 의지해서 다녀오겠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면 에우뤼디케와 함께 그 나라에 머물겠습니다"


열정은 사람들의 생각과 시각을 넘어서게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화는 지혜로운 바다의 딸림 신 프로테우스와 같다. 프로테우스가 몸 바꾸기의 도사이듯이 신화도 몸 바꾸기의 도사다. 페르세포네 신화는 디오뉘소스 신화에서 얼마나 교묘한 몸 바꾸기를 해 보이고 있는가?

신화의 의미를 알아 내려면 우리도 신화를 타고 눌러야 한다. 사슬로 붙잡아 우격다짐으로 다그쳐야 신화는 제 본 모습을 보인다. 우리에게는 어떤 사슬이 있는가? 신화를 잡아 묶을 사슬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일 수도있다. 상상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아리스타이오스의 사슬을 무기삼아 들고 우리도 저 신화의 시대로 달려들어 보자.


프로그래머로서의 삶의 의미를 알아내려면 프로그램을 타고 눌러야 한다. .....:-)

즐기는 삶이 되려면 끌려가는 삶으로는 안된다.

갑과 을의 관계이든,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의 관계이든 이끌고 가야 한다. 타고 눌러야 한다.

신화를 타고 놀듯, 인생을 타고 놀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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