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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11코스에 이어 올레길 12코스에 나선다. 무릉 외갓집을 떠난 올레길 12코스는 무릉리 마을길을 지나 신도 저수지에 이른다. 

 

무릉 외갓집 복합 문화 농장을 출발한 올레길 12코스는 좌기동 마을 회관으로 이동한다. 한낮의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는 시간이다. 인향동 "강 셰프의 키친"에서 넉넉한 점심과 충분한 휴식을 취한 까닭에 올레길 11코스에 이어 걷는 길이지만 나름 몸 상태는 좋다. 올레 12코스 12Km 지점에 있는 숙소까지 가야 할 길은 멀다. 마을길, 농지 사이를 걷는 지루할 수 있는 길이지만 완만한 길인 만큼 체력 관리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다.

 

무릉 보건소 앞 공원과 놀이터, 연자 맷돌에 그려진 올레 12코스 화살표까지 정겨운 마을길이다. 무릉 2리 마을 보물 중의 하나인 "보리수나무 그늘집"이다. "영 오십대강? 오잰허난 복삭속앗수다" 나는 대충 이렇게 추측했었다. 혹시 오십 대입니까? 오 저는 완전히 속았네요! 알고 보니 추측도 해석도 완전히 엉터리였다. 진짜 뜻은 "오셨습니까? 오시느라 많이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한다. 

 

보리수나무 그늘집에 적혀 있던 인사말을 도통 해석하지 못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제주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무릉도원 학당 제주어 교실이 쉼터 바로 옆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곳을 다녀 갔다고 한다.

 

무릉도원 학당 바로 뒤편으로는 좌기동 마을 회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양옥식 회관 처마에는 제비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봄이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제비는 번식 이후 9월이면 월동지로 이동하므로 8월 초인 지금은 새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부모들도 조바심이 날듯하다. 열심히 벌레를 물어 나르는 부모 제비들의 노고가 공감이 되는 듯하다.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서쪽 끝 수마트라섬까지 날아간다고 한다.

 

좌기동 마을 회관을 지나면 마을 길을 지나 본격적으로 무릉리 들판을 지난다. 평지동으로 향하는 길이다.

 

닭의장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자주색 달개비가 돌담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도로변으로 참깨를 말리고 있는데 그 뒤로 푸르름을 뽐내고 있는 벼가 보인다. 제주도에서도 논농사가 가능하다고? 제주의 곡창 지대라는 무릉리는 제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벼농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큰 평야는 삶은 고단 했겠지만 살기 좋은 무릉리라는 이름을 주었을 것이다. 벼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육지처럼 물이 항상 찰랑거리는 무논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밭에서 키우는 밭벼를 재배한다. 무릉리에서 키우는 벼를 "산듸쌀"이라고 부른다. 제주에는 "산듸"라는 밭벼 품종 외에도 되스리, 갈산듸, 원산듸라는 품종이 전해지고 있다.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던 올레길은 일과리와 영락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영락리로 우회전했다가 다시 마을길로 우회전한다.

 

들판을 걷다 보면 넓은 밭보다는 감귤밭을 지날 때가 풍경이 좋다. 감귤 나무를 위해서 방풍 나무를 심는 까닭이다. 제주도 감귤밭에는 방풍목으로 편백나무, 삼나무, 동백나무를 많이 심으니 노지 감귤 밭을 지날 때면 나무가 주는 풍경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에는 웃자란 방풍목들이 햇빛을 막고 경관을 해쳐서 민원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고 나무를 잘라내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올레길에서 댕강 댕강 잘려 나가는 나무들이 안타까웠는데 완전히 자르는 것보다는 조금은 흉하더라도 중간 가지를 자르는 정비 작업이 그나마 양반이다. 전봇대를 완전히 휘감은 덩굴이 색다른 그림도 선사한다. 전력회사 직원들은 덩굴이 마르면 화재 위험이 있으니 짜증 나고 싫어하는 그림일 것이다. 방풍 나무도 덩굴도 자신이 처한 환경과 입장에 따라 하늘과 땅의 인식 차이가 있다.

 

광활한 들판을 걷지만 제주의 들판에는 나무들이 있어 휑하지 않다. 중간중간에 감귤밭이 있는 덕택인 것이다. 노지 감귤밭이 모두 없어지면? 하는 무서운 질문의 결과는 나무 없는 비닐하우스와 노지 밭의 연속인 것이다.

 

무릉리 들판길 걷기의 최대 장벽은 햇빛을 피해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오후 두 시를 바라보는 시각 중천에 뜬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들판에서 그늘 찾기에 지친 우리는 이제는 대충 엉덩이 깔고 앉을자리만 있어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주 작은 나무 그늘에서 잠시 목을 추이고 길을 이어간다.

 

육지의 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다. 벼농사를 짓는데 스프링클러라니! 물이 찰랑찰랑하는 무논이 아니라 밭벼라고 하면 이해가 되는 그림이기는 하다. 이 화산섬에서 누렇게 익은 황금물결을 바라보는 풍족함이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 수평선이 아니라 지평선을 바라보며 걷는 들길다운 들길이다. "길 멍"하며 그저 허리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발자국 소리, 그리고 무더위를 뚫는 거친 숨소리만이 귓전을 스친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두발에 의지해서 "길 멍"하기에 딱 좋은 길이다.

 

무릉리 들판에서 우회전, 좌회전을 거듭하며 북서 방향으로 움직이면 무릉리의 한축인 평지동으로 향하게 된다.

 

무릉리 태양광 단지도 지난다. 발전 단지 바로 옆 고랑에는 물이 가득하다. 대정리 들판에서는 생경스러운 장면이기는 하다. 인근으로 흐르는 큰 하천이 없으니 무릉리 지역은 사진처럼 물을 모아두는 고가수조가 많기 때문이다. 물이 필요하다고 농가마다 무작정 지하수를 판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닐 것이다. 이곳은 제주도 면적의 30퍼센트가 묶여 있는 지하수 특별 관리 지역으로 함부로 사설 지하수를 개발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한다. 지하수 수위가 낮거나 해수 유입 우려가 있는 곳, 가뭄 시 지하수 과다 취수 우려가 있는 곳을 지정한다. 지하수처럼 사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원을 잘 관리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을 듯하다. 누군가의 즉흥적 판단으로 될 일도 아니고 후손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끝없는 욕망과 욕심의 결정체인 사람이 눈에 보인다고 잘 관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비닐하우스 농가에서 활짝 핀 무궁화를 만났다. "무궁화 삼천리"라는 애국가 가사에 제주도가 빠질 리는 없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노랑 무궁화인 황근은 아니지만 아무튼 활짝 핀 무궁화가 반갑다.

 

개인적으로 마음으로 채우는 꽃은 보랏빛이 짙게 도는 무궁화이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 쌓인 까닭일 것이다. 추억의 무궁화는 친구 어머니께서 관절이 아프셔서 약으로 드시기 위해 채반에 말리시던 모습, 진딧물에 당하는 나무의 모습이었다. 최근의 추억은 울산 태화강변에서 만난 무궁화동산이었다. 무궁화를 연구하던 학자가 자신의 고향인 울산의 지명을 무궁화 새 품종에 붙였던 사연을 만났던 곳이다.

 

올레길 12코스는 평지동 마을 끝자락에 있는 평지 교회를 지난다. 평지 교회가 보이는 쉼터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 간다. 어느 정도 쉬었을까? 한 어르신이 우리가 쉬고 있는 평상으로 조용히 다가오시더니 한쪽 구석에 걸터앉으신다.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지만 아무래도 "조용히 쉬고 싶다!"라고 하시는 눈치다. 우리 부부는 얼른 일어나 가던 길을 이어갔다.

 

평지동 마을을 지난 올레길은 서쪽으로 들길을 계속 걸어간다. 중간에는 평지 자리한 공동묘지도 지난다.

 

무릉리에는 커다란 오름이 없기 때문에 들판에 공동묘지가 마련되어 있다. 무릉 1리, 2리 공동묘지가 모두 이길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공동묘지 입구에 "우러러 사모하다"라는 숭모(崇慕)라는 단어에 꽃 화를 붙인 글을 바위에 새겨놓았는데 뜻은 알 수 없지만 묘지 입구에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심는 의도와 비슷한 의도가 아닌가 싶다.

 

엄청난 크기의 고가수조 아래에 그늘이 있기는 하지만 이곳은 농부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어떤 고가수조에는 그림을 그려 놓기도 하지만 물이 부족한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 위한, 생존을 위한 시설인 것을 생각하면 짠한 생각도 든다.

 

도원 연못이라고도 부르는 신도 생태 연못으로 가는 길, 얇은 나뭇가지에 가지 굵기에 비하면 엄청난 덩치의 매미가 위태롭게 붙어있다. 어딘가로 날아가다가 잠시 쉬는 모양인데 카메라에 잡혔다. 짝을 잘 만나기를!

 

신도 생태 연못에 도착했다. 겨울이면 마르기도 한다는 자연 습지인데 장마철 여름이라 지금은 물이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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