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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남대천을 건넌 해파랑길 44코스는 낙산 해수욕장의 넓은 해변길을 넉넉히 즐기며 걷다가 낙산사 앞에서 7번 국도로 나가 도로변 길을 통해서 설악 해변으로 이동한다. 예전길과 조금 바뀐 경로이다. 설악 해변과 후진항을 지나면 하룻밤 쉬어갈 정암 해변에 도착한다.

 

기다란 모래톱이 양양 남대천과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보통 하천가에는 버드나무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소나무 몇 그루가 자리를 잡았다.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양양읍 조산리 해변 산책길을 이어간다. 낙산 해변의 절반은 조산리에 나머지는 주청리에 속한다. 조산리라는 마을 이름은 산을 만들었다는 의미인데, 풍수지리상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맥이 마을 앞에서 끊겨서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노승의 말에 흙을 쌓아 작은 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머니와 딸이 함께 서핑을 하고 돌아오는 장면을 목격했다. 균형 감각도 순발력도 유연성도 떨어지므로 서핑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틀에 박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모습이었다. 멋지게 파도를 타는 것도 좋겠지만 바다에서 좋은 파도를 만나리라는 기대로  잔망 잔망 물장구를 치며 파도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잡생각은 모두 잊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지만, 땅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아이고! 소리를 내는 몸상태로는 무리일 것이다.

 

솔숲가에 마련된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쏟아지는 한낮의 태양 아래서 그늘 없는 길을 걷기란 조금은 버겁다. 배낭을 둘러멘 등은 땀으로 흥건하다. 그렇다고 흰구름 몇 조각 걸려 있는 쾌청한 하늘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멀리 설악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넓은 공터에는 노란 꽃이 한가득이다. 10여 년에 걸친 소송 끝에 양양군이 부지를 반환받은 공간이라 한다. 군유지의 활용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길은 이제 해수욕장 끝에 마련된 데크길을 따라 이어진다. 깔끔하게 정비된 해안이 참 고급스럽다.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빛은 하얀 모래를 더욱 하얗게 보이게 한다. 하얀 백사장이 파라솔과 사람들로 가득 채워질 여름 풍경을 상상해본다.

 

5월의 첫날이라서 그럴까? 햇빛은 강렬하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에는 아직 점퍼가 떠나지 않았다. 밤에는 가로등 아래로 낮에는 햇빛을 즐기며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다. 

 

산책길에서 잠시 모래 사장으로 들어가서 돌아보니 정말 광활하게 느껴지는 낙산 해변이다. 길이가 1.2Km에 이른다. 예전에는 도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6년 해제되었다고 한다. 동해의 대표적인 해수욕장답게 북쪽으로는 커다란 전광판도 서있고 해안으로는 낙산항 방파제의 등대도 눈에 들어온다.

 

해변에 설치된 갖가지 조형물들이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때로는 웃음을 머금게 하는 조형물들이 여행을 즐겁게 한다. 마법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캐릭터, 키를 뒤집어쓰고 울며 소금 얻으러 가는 아이의 모습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립 공원 시절에 낙산 해변에 왔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뀐 해변을 만날 것 같다.

 

해파랑길은 낙산사로 들어가지 않고 낙산사 앞에서 7번 국도 방향으로 나가서 낙산사를 우회해서 후진항을 향해 길을 이어간다. 

 

낙산해변에서 7번 국도로 빠져 나가는 길 건어물 시장 가게 앞 통로 천장에 제비가 집을 지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왔다 갔다 하며 진흙을 물어다가 집을 지은 새의 정성이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인데 제비도 유난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4월 초파일을 앞두고 낙산사 앞은 연등으로 가득하다. 정말 오래 오래간만에 만난 네 잎 클로버의 "지덕노체" 4H 표지석.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S), 건강(HEALTH)을 의미하는 H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 4개를 의미한다. 4H 운동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한 4H운동을 해방 후 미 군정관이 경기도에 소개하면서 농촌 계몽 운동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농촌을 중심으로 클럽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오봉산 낙산사라고 적힌 낙산사 입구 앞을 지난다. 낙산사 일주문이다. 사찰이 위치한 낮은 산을 오봉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낙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7번 국도변을 걷지만 잘 조성된 데크길로 길을 이어간다. 7번 국도변을 계속 걷지는 않고 이내 설악 해변 안으로 들어간다.

 

이전 해파랑길은 낙산사가 자리한 오봉산 자락을 넘어서 설악 해변으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7번 국도변의 데크길과 자전거길을 지나서 우회전하여 전진리 마을길을 통해서 설악 해변에 이른다.

 

7번 국도변에서 우회전하여 전진리 마을길로 들어 왔지만 바뀐 해파랑길 경로 때문일까 해파랑길 표식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라이더들이 가는 방향으로 이동해 보지만 몇몇 라이더들도 길을 헤매는지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다행히 우리는 한창 펜션 청소 중이시던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설악 해변으로 나오는 길을 찾아 이동했다. 창문 밖으로 어디 가냐고 물어봐 주셨던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도움은 나그네에게 정말 큰 기쁨을 선사한다.

 

후진항 방파제와 오봉산 자락이 작은 만을 형성하고 있는 설악 해변은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로 가득하다.

 

설악 해변을 지나면 후진항을 향하면서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에서 강현면 용호리로 진입한다. 용호리는 용못이 있던 마을이란 이름 유래가 있고 전진리와 후진항은 낙산사를 기준으로 앞쪽 나루, 뒤쪽 나루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강원도 삼척에도 후진항이 있지만 이곳은 양양 후진항이다. 이날은 얼마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지 모자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강한 흙바람이라도 몰아칠 때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용호리 해변의 모래와 바위가 어우러진 해변을 따라 길은 정암 해변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곳에서 빵순이 옆지기의 블랙홀인 빵집을 만나고 말았다. 이름하여 "정 셰프 바다 뷰 제빵소"다. 펜션과 빵집을 같이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줄 서서 빵과 커피를 사서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이 아니라 7번 국도변으로 가면 건물벽에 커다란 셰프 인형을 새겨 놓은 재미있는 장소다. 빵을 사러 간 옆지기 덕택에 나도 강제로 바다 구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옆지기 평으로는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맛은 훌륭하다고 한다. 해변에서 인기 있는 빵집을 운영하고 펜션도 운영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신하다 싶었다.

 

산책길을 따라 아름다운 정암 해변을 향해서 길을 이어간다. 쉬어갈 수 있는 숙소가 얼마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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