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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에서 내려와 오십천을 휘감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던 해파랑길 32코스는 이제 삼척 장미 공원 입구가 있는 삼척교 사거리에서 삼척항으로 향한다. 어선과 대형 선박이 같은 길로 들어오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항구다. 삼척항을 지나면 나릿골길을 따라 항구 뒤쪽의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여정이다.

 

오십천 둔치를 나오면 삼척항 방면의 좌회전한다. 

 

삼척교 앞 사거리는 7번 국도가 지나가는 큰길이므로 조심해서 길을 건너야 한다. 길 우측의 담장이 한옥처럼 고급스러운데 사실 이곳은 시멘트 공장의 연관 시설이 있는 곳이다. 울산에서도 공단 지역을 해파랑길이 지나야 했었는데 그곳도 담벼락에 담쟁이를 심어서 비록 공단이지만 삭막함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지나친 낭비만 아니라면 이런 노력은 권장할만하다.

 

정라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삼척항으로 진입한다. 이곳은 벚나무를 가지치기해서 나무가 조금은 앙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벚꽃을 선사해주는 길이다.

 

언덕에 오밀조밀 들어선 집들이 이색적이다. 이름하여 "벽 너머엔 나릿골 감성마을"이다. 60, 7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다. 마당인지 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이 이어진다. 계곡에 나루가 있던 곳이라 나릿골이라 했다는데 이름이 이쁘다. 지금이야 삼척 시내가 번화가이고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예전에는 삼척 경제의 중심이 이곳이었다고 한다. 풍성한 어족 자원으로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정어리 공장에서는 정어리기름으로 비누와 양초가 생산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어업이 더욱 번성하여 항구에는 노가리와 오징어가 산 전처럼 쌓이고 나릿골 집집마다 오징어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삼척항은 작은 어항처럼 보일 정도로 아담하지만 외국배도 오가는 엄연한 무역항이다.

 

나릿골로 올라가는 입구다. 노후주택을 정비하고, 담장을 색칠하고, 곳곳에 쉼터와 전망대, 포토존을 만들어 삼척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 이 시작이 삼척시 한 공무원의 제안이었다고 하니, 공무원 한 사람이 동네도 살리고, 도시도 살린 격이다. 흰색으로 칠해진 담장도 눈에 들어오고, 언덕 위 "감성마을 나릿골"을 새겨놓은 포토존도 주의를 끈다.

 

삼척에 들어올 때부터 저 물건은 대체 뭐하는데 쓰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어항과 화물선이 접안하는 항구가 붙어 있으므로 큰 배들이 들어오면 파도를 칠 테니 수문을 내려서 어민들을 보호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일본에서 넘어오는 쓰나미를 막기 위한 지진 해일 방지 수문이었다. 일본 서북부에서 지진 해일이 발생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이 삼척항이어서 2021년 설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3.5미터의 파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수문이 올라가 있다가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면 수문을 내린다고 한다. 일본에서 지진 해일이 발생하면 삼척항까지 2시간이 걸리고 수문을 내리는 시간은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아파트 15층 높이로 국내는 최초, 아시아 최대 크기라 한다.

 

갈매기들이 어민들의 작업 공간 위에 잔뜩 앉아 있다. 아마도 먹을 것이 있으니 저렇게들 앉아 있지 않을까 싶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공중전화 부스. 휴대폰이 없던 시절 동전으로, 전화카드로 전화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제 골목길을 통해서 삼척항 뒤쪽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다고 했던가! 우리 부부는 골목길 입구에 있는 건어물 가게의 광고를 보고는 충동구매에 빠지고 말았다. 반건조 오징어는 배낭에 꾸겨 넣고, 쥐치포는 구워서 손에 쥐었다. 전국 해변가의 수많은 건어물 상이 있지만 가격이 모두 고만고만하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가게에 붙은 광고를 보고는 혹하고 넘어갔다. 우리가 문제가 아니야, 주인장이 장사를 잘한 거야! 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끔씩은 충동구매도 하고 질겅질겅 오징어나 쥐포를 씹으면서 걷는 것도 해파랑길 걷기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좁지만 아기자기한 골목길은 우리에게는 조금은 힘든 미술관을 걷는 느낌이다. 이 또한 우리에게는 선물이자 축복이다. 그런데,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벽 너머엔 나릿골"이라고 하는데 대체 벽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치 선박 내를 걷는 느낌을 주는 하얀 담벼락 길. "수평선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하는 문구도 감성을 자극하기에 좋지만, 선박에서 사용하는 조명과 담에 매어 놓은 견인줄은 마치 선박 내부를 조심스럽게 걷는 상상을 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했을 콘크리트 골목길. 내가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는 노인의 때를 상상하게 한다. 줄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오르막을 오르다가 잠시 한숨 쉬어갈 요량으로 허리를 폈는데 눈에 가득히 들어오는 동해 바다.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노인이 되고 싶다.

 

얼마간 오르막을 오르면 우람한 소나무들 사이에 있는 솔향기 전망대를 만난다. "함께하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옆지기와 함께하는 우리의 걸음을 격려하는 듯하다.

 

솔향기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척항과 이사부 광장의 모습.

 

전망대를 떠나 계속 오르막을 오른다. 길을 걷다가 어떻게 이런 곳까지 차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과거 경사진 곳에 자동차를 세우며 돌을 괴어 놓던 기억이 떠오르며 이곳이나 저곳이나 사람 사는 것은 오십 보 백보라는 되뇜을 하게 된다.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당사자가 행복하고 평안한 것이 최고 아니겠나? 다만 어르신들은 과연 하얀 담벼락에 매어 놓은 밧줄을 사용하실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을 흘려보낸다.

 

화창한 날씨에 이곳 분들은 봄을 준비하며 텃밭을 갈고 계셨다. 눈치 없는 여행자들은 오르막에 헉헉거린다. 아무리 언덕이라지만, 산은 산이고 오르막은 언제나 힘들다.

 

마을 언덕 정상에 오르니 뷰만큼은 훌륭하다. 삼척항에서 시작하여 한창 공사 중인 화력 발전소 공사 현장과 그 뒤로 맹방 해변까지 그림은 정말 좋다.

 

언덕 정상에는 팔각 정자와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인근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들의 산책 목적지이지 않나 싶었다. 산책로를 걷다가 이곳에서 돌아가는......

 

멀리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건물 하나는 삼척 펠리스 호텔이다. 오랜 기간 방치되고 있는 건물이다. 2002년 동굴 엑스포를 열면서 행정기관은 너무 쉽게 허가를 내주었고 지금은 거의 방치 상태라 한다. 차를 몰며 지나면 인근에 건축하다가 중단되어 흉물처럼 방치된 다른 숙박시설도 있다. 절경을 가진 곳인데 안타까운 마음이다. 하긴 높은 곳에서나 보이지, 인근 도로를 지나면서는 현 상황을 인지할 수도 없다.

 

우리가 갈 길은 산 능선을 따라갈 것이므로 이제부터는 급격한 오르막은 없다. 산이지만 삼척항 인근의 산이라 그런지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 사이로 깔끔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팔각 정자를 떠나 길을 이어가는데 물고기 모양의 안내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참 정성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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