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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곡리를 지나서 수로부인 길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길로 도화 동산과 갈령재를 지나야 하는 28코스의 고비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고포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경로였지만 지금은 오르막이기는 하지만 울진북로 도로변을 걷는 무난한 길이다.

 

나곡 교차로에서는 7번 국도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나곡 4리가 있는 태봉산 자락의 태봉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태봉이란 이름은 태반을 묻은 태실이 있었다 하여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전국에 태봉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많다. 도로변을 걷지만 그림처럼 저전거나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해서 위험하지는 않았다.

 

전국의 명당을 찾아 왕실의 태반을 묻었다고 하는데 울진에도 이곳 나곡리를 비롯하여 사계리, 온정리, 삼달리, 월송리에 태실이 있다. 가계와 나라의 운까지 연관된다고 생각했다고 하고 태실이 설치되는 지역은 주민들이 태실 설치를 환영했다고 하니 당시의 문화를 추측할만하다. 사진의 나곡 태실은 광해군에게 1남 1녀의 자식이 있었는데 태비의 기록에 의하면 옹주로 여겨진다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일제는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 명당에 설치되었던 상당수의 태실들을 파괴 및 철거하여 고양시 서삼릉에 옮겼다고 한다.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가는데 멀리 7번 국도 너머의 산이 완전히 시커멓게 타버렸다. 그나마 나무 흔적이 있는 곳은 누렇게 죽어 버렸다. 산 전체가 모두 타버린 모습에 이번 울진 산불의 위력을 실감한다. 마을 민가가 멀쩡한 것이 다행이다.

 

고포항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예전의 해파랑길도 자전거길도 고포항으로 향하지만 지금의 해파랑길은 직진하여 계속 오르막길을 걷는다.

 

줄기가 매끄러운 배롱나무를 보니 도화 동산이 가까운 모양이다. 배롱나무는 한자로 백일홍(百日紅)이라고 쓰는데 소리가 변해서 배롱나무라고도 하지만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인 백일홍이라는 별도의 식물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꽃이 번갈아 피면서 꽃을 오래 피우기 때문에 백일홍(百日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배롱나무는 목백일홍, 양반나무, 간질나무, 간지럼나무로도 불리는데 재미있는 것은 손톱으로 줄기를 긁거나 문지르면 마치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가지 끝과 잎이 흔들린다고 한다. 여름이 시작하는 7월부터 여름이 끝나는 9월까지 붉은 꽃을 피운다. 여름과 함께하는 나무라 해도 좋겠다. 배롱나무들은 무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방까지 화마가 몰려온 모양이다.

 

고포항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길. 고포항으로 가는 길도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다.

 

우리는 울진북로 도로변을 걷고 있지만 7번 국도는 우리가 밟고 서있는 산속 고포 터널을 통해서 호산리로 향한다. 

 

불에 타버린 도화 동산의 모습이다. 2000년 발생한 동해안 대형 산불로 고포리 일대도 산불 피해를 입었는데 대형 산불을 진화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2년 경상북도의 도화인 배롱나무를 이곳에 심고 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주민들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곳인데, 22년이 지나서 다시 이곳에 산불이 들이닥친 것이다. 배롱나무를 모른 상태에서 이곳에 왔을 때는 도화가 복숭아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했었다. 그런데, 도화가 복숭아꽃이 아니라 경상북도의 도화이고 배롱나무 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도화공원 정자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너무 좋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산불이 만들어낸 수묵화 그 자체였다.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자연이 조금씩 그 생명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은 7번 국도와 멀리 한울 원전까지 보이는 전경이다.

 

산불이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인 만큼 나이 지긋하신 사진 동호회 분들은 이곳저곳을 카메라 앵글에 남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태백산맥 쪽의 높은 산들은 어제의 비가 단순한 비가 아니라 진눈깨비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가 걸어 올라왔던 울진북로의 모습.

 

다행히 공원 입구의 배롱나무들은 화마에 무사해 보였다. 올해 여름에도 화려한 꽃을 피워서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기를 바라본다.

 

도화 동산을 지나서 조금 더 걸으면 이제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강원도 삼척시로 넘어간다. 강원도가 "한국 관광의 1번지"라는 구호가 눈길을 끈다. 실제적으로도 강원도는 특별시, 광역시를 제외하면 제주를 이어 관광 산업의 비중이 제주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내국인의 숙박 관광은 강원도가 전국 최고라고 한다. 숙박업이 강원도 관광 산업의 중추라 할 수 있겠다. 강원도에서 하룻밤 자는 것만으로도 지역에 보탬이 될 테니 해파랑길 여행이 여러모로 좋은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KTX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정도이니 접근성도 많이 좋아졌다. 물론 강원도는 태맥산맥으로 영서와 영동으로 나뉘고 지역도 넓다. 그러니 내 개인 생각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영동이 관광 산업의 비중이 높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영서 지방이 더 높다고 한다. 

 

1968년 울진, 삼척 지구로 침투한 무장 공비 사건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물. 울진군 고포리 해안으로 30여 명이 침투했다고 한다. 해안 철책선이 많이 없어졌지만 고포리 일대는 여전히 상당한 해안 철책이 남아 있다.

 

갈령재부터는 삼척 수로부인 길이 시작된다.

 

삼척 수로부인 길, 관동대로 수로부인 길은 해파랑길과 상당 부분 같이 간다. 수로부인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통해 내려오는 설화로 헌화가와 해가의 주인공이지만 역사와 실화 속의 인물도 피부에 와닿지 않는데 설화의 주인공이야...... 아무튼 좋은 숲길에 붙인 이름이 삼척 수로부인 길이라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수로부인 이야기는 동해안 특히 삼척과 동해, 강릉에서 자주 만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수로부인을 두고 별의별 해석이 있지만 설화는 설화일 뿐 이상한 살은 붙이는 것은 영 달갑지 않다.

 

월천교와 호산으로 가는 산책길은 아름다운 숲이지만 이번 울진 산불에 생채기를 입고 말았다. ㅠㅠ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지는 산책길. 비가 내리고 봄이 오면 시커먼 바닥에서 풀들이라도 조금씩 자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불탄 흔적에 마냥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완만하게 내려가는 숲길은 걷기에 좋은 길이었다.

 

불탄 흔적이 있지만 완전히 탄 것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이번 산불이 이 정도니 다행이지 산 아래에서 만날 LNG 기지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멀리 태백산맥의 준령들은 어제 내린 눈으로 아직 하얀 설산이다. 우리는 어제 진눈깨비를 맞았지만...... 

 

삼척 수로부인 길도 많이 내려왔는지 산아래 풍경과 동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불에도 불구하고 많은 식물들이 살아 남아 주기를, 새 생명들이 힘차게 올라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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