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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리에서 부구 삼거리까지 가는 해파랑길 27코스 나머지 구간은 비상활주로를 지나고 한울 원자력 발전소를 우회하는 경로이다. 발전소 부근이 오르막이기는 하지만 포장길을 지나므로 큰 무리는 없다.

 

죽변리 읍내를 떠나면 길은 숲길과 들길을 이어서 간다. 빗속에서 숲길을 걷는 독특한 맛이 있다.

 

숲길을 지나니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넓은 들판과 푸릇푸릇한 보리밭이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산 위에 이런 넓은 들판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눈에 들어오는 넓은 풍경은 마음까지도 활짝 열어준다.

 

길은 비상활주로를 가로질러 가야 한다. 비상활주로는 공항이나 공군 기지의 활주로를 사용할 수 없을 때를 위한 공간으로 고속도로에 설치되기도 한다. 길이 막혀 있을 텐데 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잠시 멈추어 있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아마도 급한 용무를 해결할 목적이었나 보다.

 

비가 조금 거칠어지니 활주로를 따라 걷는 걸음에는 철퍽철퍽 소리가 뒤따라 온다.

 

길은 후정2리 마을길로 이어진다. 27코스 시작점이었던 죽변항 입구도 후정리였는데 그곳은 후정 3리이고 후정 1리는 후정 해수욕장이 위치한 바닷가에 있고 후정 2리는 내륙의 북쪽에 위치한다.

 

후정 2리 쉼터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우비도 벗고 넉넉한 휴식 시간을 갖는다. 눈이 섞여서 내리는 차가운 겨울비 탓에  배낭 속의 외투를 꺼내어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오들오들 거리며 준비해온 김밥을 먹었지만 따뜻한 커피는 모든 것을 녹여 주기에 충분했다.

 

후정 2리 쉼터에서 잠시 비도 피하고 식사 시간을 가졌던 우리는 매정 1길 도로를 따라서 동해선 철로 방향으로 길을 이어간다.

 

매정길로 길을 이어가는데 길옆 실개천으로 검은색의 악취가 풍기는 물이 흐른다. 처음에는 이번 울진 산불 때문에 비가 내렸으니 그 재가 흘러내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산불 발생 지역과도 거리가 멀고 재가 흘러내리면서 나는 냄새도 아니었다. 비가 내리는 틈을 타서 폐수를 내보내거나 사고로 폐수가 흐르는 것이었다. 1Km도 안 되는 곳의 동해 바다로 저 폐수가 흘러갈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대정교를 지나 좌회전하여 하천변을 걷는다. 7번 국도와 이어지는 후정 IC 교 아래를 지나 하천변을 계속 걷는다. 이제부터는 북면 고목리를 걷는다.

 

고목리 하천변 길을 걷다가 우회전하여 울진북로를 향한다.

 

고목리를 빠져나오면 울진북로 도로변을 이어서 걷는다. 건설 중인 동해선 철로 아래를 지난다.

 

울진북로 도로변을 걷지만 자전거 도로 덕분에 보행로를 확보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면으로 보이는 시커멓게 타버린 산과 나무의 모습이다. 

 

고목리를 지나며 만난 풍경. 길 옆으로 울창한 조릿대 숲의 풍경도 좋고 옥계 서원 유허비가 있는 공간도 유서 깊어 보인다. 송시열, 김상정, 전선을 기리는 곳이라 한다.

 

이른 봄 꽃을 틔운 꽃에도, 산불의 화마를 피한 소나무 금줄에도 눈길이 머문다.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진눈깨비가 내린다. 꽁꽁 얼어버린 손은 귀로 녹이고 바지 주머니로 녹여 보지만 역부족이다.

 

울진 산불의 흔적이 낭자한 도로변을 걷자니 그저 탄식뿐이다.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어떤 동물들이 보금자리로 살았을 작은 구덩이들 마저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 옆을 지나는 도로를 걸으니 발전소 쪽 숲도 산불에 무사하지 않았다. 발전소 울타리 내부의 숲이 탄 것을 보니 당시의 긴박하고 긴장했을 상황을 상상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크고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엄청난 한울 원전 단지로 들이닥친 울진 산불은 실제로 원전 울타리를 넘어 각종 전기 설비가 있는 스위치 야드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원전은 전기를 만드는 곳이지만 핵심 설비에 대해서는 전기 공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스위치 야드가 불타면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니 안전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아찔한 상황이었는지, 다행히 소방청이 다수의 소방차와 대용량 방사포 시스템을 배치하여 더 이상의 확산을 막았지만, 배후에 있는 삼척 LNG 기지까지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 확대로 무작정 밀고 들어갈 것이 아니라 자연재해 앞에 무력한 인간을 성찰하며 눈앞에 이익만 바라보는 세력에 휘둘리지 말고 안전 최우선의 결정을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핵 폐기물과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처리 방안도 실행하지 못하면서 원전 확대에만 매달리는 것은 정말 양심을 내팽개치고 이권에 매달리는 악귀들이 하는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드디어 27코스의 종착지인 부구천에 도착했다. 빗속에서 참으로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부구천 도착 직전 뱃속이 요동치더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마침 카센터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화장실 좀 써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냥 쏟아낼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제2부구교를 건너면 해파랑길 27코스의 종점인 부구 삼거리에 도착한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부구천의 모습. 응봉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인데, 상류에 덕구 저수지와 대수호가 있어서 수량이 제한되는 특성이 있다. 최근에 하천 정비 작업을 했는지 부구천은 사람의 손자국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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