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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리에서 24코스의 종점인 기성 터미널까지 가는 길은 해안길을 걷다가 울진 비행 훈련원을 빙 돌아 기성 읍내를 가로질러 들어간다. 공항을 돌아가는 길은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라 체력 안배에 주의해야 한다.

 

가끔씩 들리는 비행기 소리를 벗 삼아 해안길을 걷다 보면 비행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돈이 많이 든다는 한계가 있지만 내가 조종간을 잡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수토사 이야기가 있던 구산항을 뒤로하고 길을 이어간다.

 

해안길을 당수 치기로 쪼개 놓은 바위 하나.

 

봉산리 작은 포구에는 어선은 간데없고, 캠핑카와 낚시꾼 차지다.

 

고려말 문신이었던 백암 김제의 충절시. 평해 군수로 있던 김제는 고려가 망하자 시 한수 남기고 동해 바다로 사라졌다고 한다. 후대에 이 시를 도해암이라는 바위에 새겨 놓았었는데 구산항 방파제 공사를 하면서 파괴되어서 다시 만든 것이라 한다. 목숨으로 의를 지키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배를 불러 동쪽 노중련의 나룻터를 묻노니
오백 년 고려조의 한 사람 충신이로다
외로운 이 영혼이 죽지 않고 남는다면
붉은 해를 따라가 중원 땅 비추길 원하노라.

다듬어지지 않은 봉산 2리 바닷가는 캠핑족 차지다. 마을은 조용해 보이지만 봉산 2리는 나름의 독특한 특산물을 가지고 있는 동네다. 이름하여 "울진바다생젓갈". 원래는 마을의 아낙네들이 앞바다에서 잡히는 꽁치나 멸치로 젓갈을 담가 먹었던 것인데 지금은 봉산리 앞바다에서 잡히는 꽁치를 깨끗하게 손질해서 담근 젓갈을 포장해서 판매한다고 한다.

 

봉산 2리에서 봉산 1리로 넘어가는 길은 작은 언덕길을 지나야 한다. 긴 거리를 걸을 때면 작은 오르막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ㅠㅠ

 

봉산 1리 앞바다는 평화롭기만 하다.

 

봉산 1리 쉼터 뒤로는 표산 봉수대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영덕과 삼척을 이어주는 봉수대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봉수대 유적은 마을 뒷산 구릉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쉼터 뒤로는 공항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동그란 공 모양의 기상 레이더로 보이는 시설이다.

 

봉산 1리 끝자락으로 산줄기 하나가 해안으로 튀어 나가 있다. 우리는 저 산자락을 타고 넘어가야 한다. 산 뒤로는 기성항이 위치하지만 해파랑길은 기성항으로는 가지 않는다.

 

길 중간중간에는 초미니 포구나 심지어 방호벽에도 작은 기중기가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돌미역을 채취해서 육지로 끌어올릴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추난개교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다리를 건너는데 지금이야 공항 시설이 상류 맨 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좋은 계곡이 있었던 모양이다. 춘향계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는데 단어적 의미로는 봄 내음이 나는 시내라는 의미이다. 이름은 이쁘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마을길을 가로지른다.

울진 지역을 걸으면서 만나는 특이한 모습 중 하나는 길 근처에 봉분들이 몰려있는 모습이었다. 정확한 이유와 역사는 모르겠지만 전국에서 묘지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 경북이고 그다음에 경남이라고 한다. 혹자는 매장을 선호하는 유교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화장이 권장되는 사회 분위기와 매장의 한계 속에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길은 7번 국도를 향해서 오르막을 차근차근 오른다. 은근히 땀나는 길이다.

 

오르막에서 바라본 봉산 1리의 전경이다. 뒤로는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앞으로는 바다를 품고 있는 포근한 마을이 이곳도 참 좋은 마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머리 위로는 오후의 태양 아래 경비행기들이 우웅 소리를 내며 차례로 공항으로 들어간다.

 

언덕을 내려가면 7번 국도와 만나는데 해파랑길은 7번 국도와 나란히 가다가 읍내로 들어가는 기성로를 따라 걷는다.

 

7번 국도 건너편에서는 동해선 기성역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포항에서 삼척까지 단선으로 건설되는 동해선은 2023년 개통 예정이라고 한다. 기성역이 만들어지더라도 요즘 외곽 대부분의 역사 추세처럼 무인역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밭 한 귀퉁이로는 올해 농사에 사용할 비료가 쌓여있고 왜소하니 그냥 지나 칠 법한 장소를 하나 만났다. 황응청 효자 비각인데 효자비를 품고 있는 작은 비각이다. 조선 중기 시대 문인이었던 대해(大海) 황응청이란 분의 효자비로 양친의 3년상을 모두 치렀다고 한다.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살아계실 때처럼 모시는 시묘살이를 두 분 다 모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평해 황씨에 대한 이야기로 후한 시대 황락이라는 사람이 베트남 사신을 가다가 풍랑을 만나 평해에 정착하여 신라에 귀화했다고 한다. 이 분이 평해 황씨의 시조다. 전국에 산재한 열녀문, 효자문의 하나가 아니라 명문가와 학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성면을 가로지르며 황응청을 배출한 명계 서원 앞을 흐르는 척산천을 지나 기성면 읍내로 진입한다.

 

읍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은 벚나무가 화려하다. 봄이면 벚꽃으로 정말 화려하겠다 싶었다.

 

아쉬운 점은 가드레일 설치와 인도 정비가 얼마 되지 않았던 모양인데 인도로 걷자니 나무에 부딪히고 나무를 피해서 요리조리 걷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도로변으로 걸었다는......

 

기성면 읍내에서는 공항으로 착륙하려는 비행기들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 머리 위를 날던 비행기들도 안녕이다.

 

드디어 24코스 종점인 기성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이라기보다는 버스가 잠시 들렀다 가는 버스 정류장이다. 아무튼 버스는 자주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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