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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리 가는 도로 위를 구름다리로 건너서 황성개비산, 재구남봉, 망일봉을 거쳐서 목은 이색 기념관에 닿으면 오늘 여정의 고비인 산행은 끝나게 된다. 이후로는 도로를 따라서 평탄한 길을 걷는다.

 

구름다리가 없었다면 사진리 가는 도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했을 텐데 지침 몸 상태에서는 구름다리가 고맙다.

 

구름다리가 도로 위로 상당한 높이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아찔한 편이다.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영해 읍내 방향과 사진리 해안의 전경이다. 사진리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그 유래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진과는 연관이 없고 포구가 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태양광 전지판을 붙인 LED 안내판도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소나무의 솔방울을 달고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목은 이색 산책로가 시작된다.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기는 하지만 괴시 전통마을까지 능선을 따라서 3.4km가 남았다고 한다. 

 

땅의 토질이 좋은 곳이라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갔을 소나무들이 척박한 땅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구불구불하다. 마치 굽이 많은 인생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통통하고 쭉쭉 뻗은 소나무보다 이런 나무들에게 정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살아온 인생 때문일까? 굽이 많은 인생사에 스토리가 넘치듯 이 나무들도 수많은 바람 이야기, 불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블루로드 안내판에서 임도가 있다고 했는데 길 중간에 만난 골짜기가 바로 그 임도인가 보다. 임도라고 하기에는 그저 골짜기다. 저질 체력의 부부에게는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언덕이 아찔할 뿐이다.

 

언덕 위 안내판에도 괴시 사진 간 임도 갈림길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갈림길의 모습은 임도라기보다는 그냥 골짜기다. 물론 진입로 부근은 길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지도에도 길로 표시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다니지 않으니 길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뻥 뚫린 도로가 있는데 누가 이 임도를 걸을 것인가?

 

22코스의 6Km 지점이라는 표지판을 보니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쭉 빠진다. 황성개비산과 재구남봉을 지났지만 아직도 10Km가량이 남은 것이다. 오후의 태양이 조바심을 부른다.

 

관어대 갈림길에 도착했다. 관어대가 상대산이라는 산중에 있기는 하지만 관어대로 가는 길 중간에 해파랑길을 만나기 때문에 몸이 너무 지친 상태라면 우회할 수 있는 경로다.

 

목은 이색 기념관으로 가는 내리막 길은 다행히 큰 무리가 없다. 다만, 포클레인으로 나무를 쓰러뜨리면서까지 길을 넓게 만들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는 길이었다. 주변에 있는 묘소 때문일 것 같기도 하고......

 

관어대 탐방로도 목은 이색 기념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관어대 표지판이 계속 나오기는 하지만 목은 기념관을 향한 걸음을 이어간다.

 

공사 중이라 더 심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서 온통 먼지투성이가 된 상태로 길을 내려오니 괴시리 전통마을과 이색 산책로의 갈림길이 나온다. 해파랑길은 목은 이색 기념관으로 깊게 들어가야 한다. 목은 이색 기념관 앞에는 산행길에서 범벅이 된 먼지를 떨어낼 수 있는 장비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먼지를 상쾌하게 털어내고 길을 이어갈 수 있다.

 

목은 이색 기념관 앞으로는 괴시리 전통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입구에는 금줄이 쳐져 있었다. 영양 남 씨의 집성촌으로 목은 이색이 중국의 괴시 마을과 비슷하다고 괴시 마을로 불렀다고 한다. 목은 이색이 태어난 외가가 있던 곳이다. 새끼줄에 창호지를 잘라서 끼워 내거는 금줄은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라고 한다. 

 

최근 태종 이방원이라는 드라마에서 고려말 우왕을 옹립하는 과정에 잠시 만났던 목은은 끝내 조선의 관료를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성리학을 조선에 들여오고 고려말과 조선 초기 당시 시대를 주름잡았던 정몽주, 정도전, 조준, 남은, 이숭인, 권근, 하륜 등이 모두 그의 제자였으니 그가 민족에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목은 이색 산책로는 그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을 괴시리 마을이 목은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괴시리 전통 마을에서 길을 건너면 깔끔하게 정비된 인도를 통해서 해안을 향해 괴시리 마을길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넓게 펼쳐진 영해 평야를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인도와 나란히 가는 도로의 이름이 예주 목은길인데, 예주(禮州)는 영덕군의 옛 지명이라고 한다. 고려 태조 당시 처음 예주라 불렸다.

 

예주 목은길은 대진 해수욕장까지 직진하지만 길이 중간에 우측으로 관대길로 나뉘고 해파랑길은 우측 관대길을 통해서 대진항으로 나아간다. 관어대 가는 길이 있어서 관대길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싶다.

 

관어대의 길 좌측에 있는 상대산 산 정상에 있는 누각이다. 물고기를 보는 곳이란 의미인데 아마도 이 높은 곳에서 본 것은 고래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산 정상에 있는 누각은 2015년에 영덕군이 목은 선생을 기리면 세운 것이고 실제 관어대는 정상에서 백 미터 정도 아래에 있는 절벽이라고 한다. 물론 산 전체 또는 산과 인근 마을을 관어대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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