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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4코스를 끝낸 우리는 15코스 초반에 위치한 숙소까지 3.5Km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이전의 해파랑길이라면 대보 저수지를 거쳐서 내륙으로 걸어야 했겠지만 이제는 해안으로만 걷는 길이다.

 

스탬프 함을 만나서 잠시 도장을 찍고 가는 것은 코스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코스를 제대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해파랑길 안내판에는 산을 타는 이전의 15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바뀐 코스는 화살표 스티커가 대신한다. 조금 늦었지만 14코스에 이어서 15코스를 걷는다. 한 시간 정도를 더 걸으면 따뜻한 숙소에 들어갈 수 있다!

 

호미곶 등대가 먼바다를 향해서 빛을 내뿜고 있다. 12초에 한 번씩 불을 밝힌다고 한다. 190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이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인 등대이다. 8각의 탑 형태로 벽돌만을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6층으로 된 내부의 천장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자두 꽃 모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작업했으며, 등대를 만들게 된 동기가 대보 앞바다에서 일본인 배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한 것이라 하더라도 1백여 년 이 땅을 비추어준 등대가 대단하다 생각된다. 무엇을 만들든 장인 정신으로 만든 것들은 오래 세월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 아닌가 싶다.

 

상생의 손을 뒤로하고 새로운 해파랑길을 따라 해안길을 걷는다. 국립 등대 박물관 뒷길이다.

 

모자를 붙잡고 걸어야할 정도의 세찬 바람이 부는 날씨지만 호미곶항의 어선들은 불을 밝히고 조업을 준비하고 있다.

 

호미곶항에서 바라본 호미곶 해맞이 광장 방면의 모습이다. 새천년 기념관 앞의 동그란 조형물의 조명만이 저곳에 해맞이 광장이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구만리 어항 근처에 독수리 바위가 있기는 한데 컴컴한 어둠으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해파랑길 리본으로 바람의 세기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추우니 모자를 벗을 수도 없고 모자를 꽉 붙잡고 한 걸음씩 길을 나아간다.

 

"호미곶 해맞이"는 이 지역을 살리는 먹거리가 아닌가 싶다. 가끔씩 나오는 펜션들 덕분에 해는 졌어도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었다.

 

오늘 숙소는 15코스 초반에 있는 발리오레 펜션이다. 13코스 절반과 14코스에 15코스의 3.5Km 정도를 더했으니 약 28km를 걸은 하루였다. 저질 체력 둘이 하루에 걷기에는 조금은 벅찬 거리다. 이 힘든 하루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도중에서 만난 편의점에서 구입한 냉동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구워서 맛소금에 찍어 먹었는데, 단순했지만 이 또한 꿀맛이었다. 다음부터는 맛소금이 필수 목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밤새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은 아침에도 마찬가지다. 바람은 거세지만 다행인 것은 하늘은 맑다. 양달에 가면 그나마 따스하고 응달에 가면 손이 시려서 호호 불어야 한다. 몸을 꽁꽁 싸매고 숙소를 떠나 해파랑길 15코스를 이어간다. 오늘은 15코스를 끝내고 바로 이어서 16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구만리 해안길을 걷지만, 오늘의 바다는 지금까지 만났던 동해 바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을 지났지만 15코스의 종점인 흥환 부근까지는 영일만 안쪽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기도 하다. 

 

구만리는 포항에서도 바람과 파도가 세기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청어 떼가 세찬 파도에 해안가로 떠밀려 와서 갈고리로 찍어서 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할 정도다. 해안가 바위를 세차게 때리는 파도가 정말 무서울 정도가 강하다. 동해 바다는 적도에서 올라오는 난류인 쿠루시오 해류가 대마도 인근에서 동한 난류로 나뉘어 남해안과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고, 오호츠크해의 리만 해류가 북한 한류가 북한 지역을 타고 내려오는데 여름철에는 이 난류와 한류가 원산만 인근에서 만나고 겨울철에는 만나는 지점이 포항 인근까지 내려온다고 하니, 이런 해류의 흐름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장의 생생함을 담을 수는 없지만, 세찬 바람과 파도를 동영상으로 남겨본다.

 

세찬 바람 가운데서도 많이 걸었나 보다. 숙소가 상당히 멀리 보인다. 구만리라는 지명은 설은 다양한데 명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앞길이 구만리"라고 할 때처럼 아주 아득할 정도로 먼 곳이라는 의미도 있고, 구릉지가 많다고 하여 구만, 거북이가 많이 살던 곳이라 하여 구만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해안길에서 929번 호미로로 올라가는 작은 터널이 하나 있는데 해파랑길과 함께 가는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은 산 우측의 해안길을 따라간다. 파도 위를 걷는 그야말로 마의 구간이다.

 

잘 정돈된 해안길을 걸을때만 해도 파도가 길까지 넘어와 땅을 적신 것을 보며 그러려니 했다.

 

 

해안의 갯바위들을 강하게 때리는 파도를 바로 앞에서 눈으로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위협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그저 연약한 작은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세찬 파도 위를 걷는 데크 구간이 있었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파도가 데크 위를 쓸고 지나가는 구간이었다. 난간이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파도에 젖을까, 미끄러져 넘어지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쫄보 두 사람은 파도를 맞지 않으려 뛰어가며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스릴 있는 해안길이지만 바위 절벽으로 모아이상 얼굴 바위도 만난다. 큰 얼굴 안에 작은 얼굴이 하나 더 있는 자연 작품이다.

 

대동배리 방파제의 등대가 보이는 지점만 해도 데크길이 파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해서 우리는 와우! 하는 탄성과 함께 이것을 어찌해야 하나! 하면서 멈추어 서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데크를 훑듯이 지나간 파도는 바로 옆 바위에 부딪히며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기에도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파도가 숨 쉬는 틈을 찾아서 하나, 둘, 셋 하며 중년의 부부는 종종 뜀박질로 놀이동산의 그 어떤 스릴 보다도 짜릿한 순간을 함께 지나간다. 이 데크를 설치하신 분들은 상상치 못할 짜릿함을 누릴 수 있어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떨림이 있었지만 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전투 같은 데크길 걷기가 끝나니 평온함이 감도는 대동배리로 접어든다. 산 그늘 때문에 계속 응달을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따스한 햇빛이 비추는 산자락만 보아도 따스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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