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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마하발리푸람까지 다녀온 우리는 일요일 일정을 정리하고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단잠에 빠져 있는데 옆지기가 급하게 몸을 흔들며 잠을 깨우는 것이었다. 이상한 메일이 왔는데 이거 꼭 확인해야 될 것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었지만 비몽 사몽이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뿔싸, 메일 내용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이 결항되었다는 것이었다. 출발 하루 전에 취소라니...... 다른 항공편으로 예약할 수 있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고 간단한 환불 방법만이 나열되어 있었다. 잠도 완전히 깨지 않았는데 황망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밤 12시를 향해서 가는 시각에 어디다 물어볼 방법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결항으로 인한 환불은 처리 과정에서 다른 항공편으로 예약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메일 내용에는 그런 내용은 찾을 수도 없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인도를 탈출하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였으므로 항공편을 검색해보니 코로나-19 때문에 항공편이 축소되기는 했어도 에어아시아를 통해 태국 경유로 한국에 가는 방법과 말레이시아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가는 방법 모두가 존재했다. 어차피 주재원인 동생을 만날 목적으로 첸나이에 왔고 다녀볼 곳도 어느 정도 다녀왔으므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입출국 제한 상황을 감안해서 다음날 아침에 첸나이를 출발하는 항공편으로 예약했다. 비몽사몽간에 느린 인터넷으로 급하게 예약하다 보니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까지 지불하는 일도 벌어졌다. 

 

새벽 5시는 원래 동생이 이역만리까지 동생을 만나러 온 형과 형수를 위해서 새벽 생선 시장에 다녀올 계획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행선지가 첸나이 공항이 되었고 원래는 밤중에 있어야할 작별 인사가 새벽에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공항에 들어가는 것도 간단치가 않았다. 첸나이 공항은 네팔의 카트만두 공항처럼 예약한 E-티켓이 있어야 공항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한국에서 인쇄해온 원래의 티켓을 보여주니 밤에 출발하는 건데 벌써 들어가냐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에 있는 온라인 탑승권을 보여주니 이번에는 한국어로 되어 있다고 난감해한다. 남녀 두 명이 한 조로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조장인듯한 남성이 오케이 하니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 아이고...... 첸나이 공항에서도 에어아시아는 온라인 체크인을 했더라도 탑승권을 다시 받아야 하는데 탑승권을 받으며 결항으로 인한 보상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그래도 어쩌랴!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보안 검사 과정에서도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옆지기가 선물로 주겠다고 마트에서 구매한 비누가 엑스레이 검사에서 걸린 모양이었다. 물론 직원이 비누를 보더니 자기네 나라 제품인줄 아는지 엄지를 보이면서 문제가 없다고 가라 했지만 별것도 아닌데 참 고자세를 취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처럼 인도도 남성, 여성을 서로 다른 구역에서 보안 검사를 진행했다.

 

첸나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항공편은 올때처럼 빈자리가 많았다. 저가 항공답게 첸나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서 승객을 태우고 바로 출발하는데 에어아시아 항공기에 세 번째 탑승이라고 벌써 익숙해진 느낌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가는 항공기에 환승해야 하므로 긴장하며 환승을 준비하고 있었을텐데 이제는 긴 환승 시간 덕택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무사히 쿠알라룸푸르를 떠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드디어 인도 첸나이를 떠난다. 여행 마지막날 갑자기 전해진 비행기 결항 소식이 아니었다면 더 알찬 여행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결항 소식을 늦지 않게 확인한 것도 다행이고, 한국으로 가는 하늘 길이 아직 열려 있는 것도 다행이고, 인도나 말레이시아에서 출국 금지나 입국 금지가 아직 없는 것도 다행이고, 빠른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수 있었던 것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고 조용히 휴식을 취해본다.

 

오전 8시 40분 정도에 첸나이를 이륙한 비행기는 시차를 감안해서 오후 3시경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KLIA2)에 도착했다. 급한 환승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유가 많기는 했지만 자정이 넘는 시각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시내 투어는 첸나이 가는 길에 다녀왔고 새벽에 급하게 나오느라 피곤했던 우리는 다시 시내 투어를 할 수는 없었고, 공항을 돌아다니다가 식사도 하고 환승 호텔에서 마음 편하게 쉬기로 했다.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들기는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자정이 넘는 시간 쿠알라룸푸르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승객이 있었다. 다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조용히 탑승했지만 그들 마음에서도 내 마음에서도 여행을 끝내는 아쉬움과, 코로나 사태에도 무사히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는듯 했다. 비행기 뒤쪽에는 빈자리도 있어서 옆지기와 교대로 누워서 가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드디어 한국으로 간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비행이다. 아직도 어제의 당황스러움이 가슴 한켠을 흔들고 있다. 비행기가 결항되었더라도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자책도 남는다. 그렇지만, 이 모든 아쉬움을 뛰어넘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태산 같은 위안이 된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구름 위를 날고 있는 평화로움같은 인생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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