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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랄리 샹그릴라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이틀째 밤은 식당에 딸린 방에서 나름 깊은 잠을 이루었습니다. 잠에는 피곤이 약이었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조금 시끄럽고 방문 밖에서 온갖 일이 있었지만 깊은 밤과 새벽 시간에는 조용했습니다. 늦게까지 놀고 싶어도 산장에서는 소등 시간이 있으니까요. 시끄럽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덜 추운 방이었으니까요.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른 새벽 시간 식당에는 어제 방을 잡지 못해서 식당에 잠자리를 마련한 트래커가 홀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포터들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부엌과 데스크는 이제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촘롱까지 16Km가 넘는 길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일단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틀 전부터 시작한 배탈, 설사의 후유증은 오늘 아침까지 이어져서 아침식사는 어제 먹었던 쌀죽 아닌 쌀죽을 먹기로 했습니다. 쌀죽 아닌 쌀죽은 메뉴에 없던 것으로 아저씨께 부탁을 드렸더니 해주신 것입니다. 물에 밥을 끓인 것인데 그래도 둘이서 한 그릇을 나누어 먹고 가볍게 하산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가벼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온 데우랄리 샹그릴라 게스트 하우스 주변은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가 가벼운 하산길을 반겨 줍니다.  저 멀리 동이 터오는 계곡 쪽으로 가다 보면 포카라에 닿겠지요?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Machhapuchhre Base Camp, 3,700m)까지 두시간이라는 데우랄리(Deurali, 3,230m) 표지판을 마지막으로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산장을 향해 걷습니다.

 

뱀부에서 데우랄리로 올라갈때 계곡에 놓인 망가진 다리를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건너는 황당한 짓을 감행했던 그 장소입니다. 아래가 숭숭 뚫린 다리를 건너다가 하마터면 사고가 날뻔했던 장소입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보니 나무다리 옆으로 징검다리 길이 선명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저 망가진 나무다리를 배낭을 멘 상태로 묘기하듯 건넜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깊게 패인 계곡의 모습을 보면 10월, 11월의 좋은 날씨가 지속되는 계절에 이 정도이지만 우기나 눈이 내리는 시기에 ABC 트레킹을 한다면 임시로 놓인 다리로 계곡 건너기는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몸이 피곤하다고 저처럼 별생각 없이 걷는다면 큰일을 치를 수 있습니다. ABC 트레킹 코스가 아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전을 감행해야 하는 코스는 없습니다. 위험하다 싶은 길이라면 급하게 건너기보다 주위를 살펴보고 안전한 길을 택해야 합니다.

  

20여분 걸었을까요? 데우랄리 산장도 이제 안녕입니다.

 

힌쿠 동굴(Hinku Cave) 쉼터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기다란 계단을 내려갑니다.

 

계곡 건너편 산으로 내려오는 폭포의 모습이 절경입니다. 

 

습기가 많아 이끼를 쓰고 있는 나무와 대나무 숲을 보니 고도도 3천 미터 아래로 내려가고 히말라야 산장 근처에 도달했나 봅니다.

 

히말라야(Himalaya, 2,920m)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8시 새롭게 산장을 짓고 있는 일꾼들의 분주한 모습입니다. 데우랄리에서 1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거북이걸음을 걷는 저희도 하산 길은 속도가 붙는 모양입니다. 히말라야 산장을 지나는데 어제 데우랄리 산장에서 방이 잡지 못해서 그냥 산장을 떠나가야 했던 중국인 커플이 한참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산장 전에도 길에서 여러 번 마주친 터라 서로 가볍게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저희보다 먼저 산장에 도착했지만 미리 예약했던 저희는 방을 얻었고 그들은 얻지 못했으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느낌이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히말라야 산장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강한 헬기콥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동안은 저희 근처를 날아 지나가는 헬기 소리만을 들었는데 그동안의 소리와는 다른 소리였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사람을 태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인도 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을 헬기에 태우고 일행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그냥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걷는 모습으로 보아 큰 부상이기보다는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행인 남성들의 차림이 한국이나 서양인들의 트레킹 차림과는 다르게 마치 유원지에 놀러 온 것처럼 가벼운 차림이었기에 더욱 그런 추측을 하게 했습니다. 네팔에서 부상자나 더 이상 산행이 불가능한 사람을 후송할 때는 별도의 의무 후송 헬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에어 다이너스티(Air Dynasty)라는 헬기 운용 회사가 대행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관광용 헬기, 전세 헬기를 운용하는 회사가 의무 후송까지 대행하는 구조인 것이죠.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으면  가이드를 통해 구조 헬기를 부른 답니다.

 

데우랄리까지 오르막으로 표준 걷기 속도 1시간 30분의 거리를 1시간에 내려왔으니 저희 걸음으로는 준수하게 걸어온 것입니다. 이런 페이스라면 촘롱까지 가는 목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스멀스멀 생깁니다.

 

오르막 산행길에 올라갔었던 계단들을 내려갈 때는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내는 노력은 필요 없죠 그저 무릎의 충격을 최소화하며 천천히 내려가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내가 이걸 어떻게 올라왔지!" 하면서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다시 올라간다 생각하면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아찔합니다.

 

"Shree Pozenhem Baraha temple"이라는 작은 사원과 계곡 건너편으로 수많은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던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아침 이번에는 커다란 합판을 이마 끈으로 이고 가는 포터를 만났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이곳을 찾는 트래커들이 있으니 저분들도 저런 일거리로 돈을 벌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지만, 참 고단하겠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도 들고, 저 일을 끝내고 정산을 받아 하산하는 길은 얼마나 가벼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서 위쪽에 있었던 히말라야 산장이나 데우랄리 산장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숲은 점점 깊어 갑니다.

 

히말라야 산장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도반(Dovan, 2,505m)에 도착합니다. 이른 아침 둘이서 쌀죽 한 그릇으로 요기를 대신했던 저희는 시장기가 깊어지기 전에 도반에 있는 산장에서 간단한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기로 했습니다. 꿀을 얹은 팬케이크와 망고 주스 1캔에 650 루피를 지불했습니다. 오전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보니 산장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어 팬케이크를 주문하고 부엌에서 팬케이크 만드는 과정을 잠깐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나이로 보이는 청년이 가스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반죽을 부어 천천히 익혔습니다. 팬케이크와 포크, 칼, 네팔 꿀이 나오는데 저희는 이 요리를 전체 일정 중에 세 번 정도 먹을 정도로 입맛에도 잘 맞고 체력 보충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팬케이크 위에 꿀을 듬뿍 올려 먹는 맛이란! 지금 생각해도 입맛을 돌게 하는 기억입니다.

시커먼 남자들 여럿이 산장과 부엌을 지키고 있었는데 산장지기로 보이는 남자가 식당에 들어와 저희의 식사가 나올 때까지 장황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그가 뱉은 짧은 한국어 몇 마디가 저희와 그와의 소통 거리를 줄여 주었고, 저희가 다녀왔던 경로와 앞으로의 경로 이야기로 시작해서 안나프루나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과 박영석 대장의 이야기, 최근에 발견된 희생자 시신의 이야기, 네팔의 총리가 그들을 기리며 세운 사원 등으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영어로 설명하는 그의 말속에는 한국에 대한 친밀함과 열정이 있었지만 장황한 그의 이야기가 식사를 앞둔 저희에게는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도반 산장에서의 짧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마차푸차레 쪽의 산이 만드는 산 그림자가 산장 근처까지 내려왔습니다. 하산 길에도 이어지는 맑은 날씨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 줍니다.

 

도반부터 뱀부까지는 대나무 천지입니다. 마치 판다곰이 살 것 같은 대나무 숲입니다.

 

산을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길이 내려갈 때는 보입니다. 산을 오를 때는 그저 배낭의 무게와 저질 체력을 이겨 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돌아가는 나무다리보다는 가로질러 계곡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같은 계곡이라도 보는 방향과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인생의 고비를 만나면 아무 생각 없이 직진하기보다 멈추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른 시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도반에서 바라보는 마차푸차레의 모습. 파란 하늘과 깃털 구름을 배경으로 한 봉우리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트래커들이 위쪽으로 아래로 모두 떠난 도반(Dovan) 산장 주변의 풍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입니다.

 

도반을 떠나면서 만난 조금은 씁쓸한 풍경. 저희도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사람이 다니는 곳에는 늘 쓰레기가 생기기 마련이죠. 트래커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들 중에서 쓸만한 것들은 챙기고 나머지 쓰레기들을 소각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코스를 걷다 보면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담으며 걷는 트래커도 두어 번 보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포터들이 던져버린 쓰레기들도 가끔 눈에 보였습니다. 그래도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곳은 산장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짐 운반을 끝내고 빈 바구니나 빈 몸으로 산을 내려가는 포터들의 발걸음이 참 가벼워 보입니다. 데우랄리까지 올라가려면 4시간 30분이라고 하는데 느린 저희 걸음으로도 중간 간식 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 50분이 걸렸으니 하산길이 빠르기는 빠릅니다. 

  

가끔씩 시야가 확보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는 마차푸차레입니다. 어찌 보면 ABC 트레킹 코스 내내 제일 많이 보는 봉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산 길이 재미있는 것은 가끔씩 마주치는 사람 들에게서 길이 얼마나 힘드냐, 경사가 급하냐는 질문을 받는 것입니다. 산행을 끝내고 내려가는 사람이 누리는 우쭐한 시간이죠. 오르막을 오르며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여유로운 인사와 함께 발걸음까지 가벼우니......

 

드디어 저희가 올라갈 때 묵었던 뱀부(Bamboo, 2310m)에 도착했습니다. 데우랄리에서 3시간 50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촘롱까지도 가능하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배낭을 벗은 등에는 땀이 흠뻑 배었지만 따스한 오전의 햇살이 내리쬐는 산장 마당은 마치 봄의 싱그러움과 여유가 흐르는 듯했습니다. 저희 묵었던 뱀부의 트레킹 게스트 하우스(Trekking Guest House & Restaurant) 앞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쉬었습니다. 작은 키에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던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장은 저희를 알아보더니 엄지 척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하룻밤 묵은 장소라고 화장실을 비롯해서 이곳저곳이 익숙한 느낌이 신기했습니다.

 

히말라야의 아침 햇살은 정말 좋습니다. 아침 햇살 만으로도 힘을 얻는 듯합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촘롱으로 표지판도 보이고 다음 기착지인 시누아의 표지판도 보입니다. "많이 왔다! 거의 다 왔다!"를 외치며 다시 걷기를 시작합니다.

 

하산길에서는 올라갈 때 보이지 않았던 산장들에 딸린 텃밭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포터들이 운반해서 공급하는 것보다 텃밭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산장 지기들에게는 이익이겠지만 지금 이 길을 걷는 트래커뿐만 아니라 히말라야를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유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비닐하우스를 보리라고도 상상도 못 했는데...... 작물을 키우는 주인장의 열정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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