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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부(Bamboo, 2,310m)의 트레킹 게스트 하우스 산장을 오전 7시경에 떠나 히말라야(Himalaya, 2,920m)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경이니 3시간가량이 소요되었습니다. 저희의 거북이걸음 치고는 잘 걸었던 여정입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데우랄리까지는 1.95Km 정도 남았고 해발 고도 3천 미터를 넘어서게 됩니다. 등짝으로 진하게 배인 땀 때문에 서늘하기는 하지만 히말라야 산장에서 간식을 먹으며 넉넉하게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히말라야는 산맥의 이름이지만 이곳은 두어 개의 산장이 자리하고 있는 히말라야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입니다.

 

히말라야 산장들의 전경입니다. 해를 가린 산 그림자가 이제 산 중턱을 넘어서 산장 근처까지 내려왔습니다. 며칠 걸어보니 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가 해를 받으며 맑은 하늘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습니다. 오후 시간대가 되면 어김없이 안개와 구름이 해를 가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포리지와 삶은 계란으로 가볍게 하고 떠난 저희는 더 시장끼가 느껴지기 전에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오트밀 포리지와 한국 라면을 주문했습니다. 식사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To enjoy life one should give up the lure of life" 삶을 즐기려면 또는 행복하려면 삶의 유혹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로 물질적으로 더 가지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인간에게 수없이 몰려드는 돈, 성문제, 권력의 잘못된 매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누군가에게는 완벽함, 완전함을 기다리거나 바라며 인생을 어렵게 하기보다는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잠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간디의 명언이었습니다.  

 

작은 주발에 나온 라면(550 루피)과 포리지(400 루피)를 싹싹 비웠습니다. 앞선 산장들에서 시킨 라면들이 면이 조금 덜 익은 상태로 나오길래 잘 익혀 달라고 부탁했더니 역시 조금 다르더군요. 맛있는 간식시간이었습니다. 

 

히말라야 산장에서의 맛있는 식사와 휴식 시간을 뒤로 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데우랄리로 마지막 걸음을 옮깁니다. 뒤로 작은 헬기 착륙장이 표시되어 있는데 저 작은 공간에 실제로 헬기가 착륙해서 사람을 실어 나르더군요. 하산 길에 중도 포기자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헬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목격했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이렇게 맑은 가을 하늘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가해지는 배낭의 무게나 오랜 걸음에 지친 두발의 피곤함은 잠시 날아가는 듯합니다.

 

계곡 건너편 산에서 떨어지는 한줄기의 폭포를 사진에 담으려고 하니 고봉을 넘어서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이 질투하듯 렌즈를 살짝 훑고 갑니다.

 

새파란 하늘과 11월에도 사라지지 않는 녹음, 겨울을 준비하며 낙엽을 떨군 나무들과 가벼운 구름들, 히말라야의 고봉들과 오전의 따스한 햇빛이 만들어내는 절경들은 그저 와! 하는 감탄을 연발하게 합니다. 정말 잘 왔다! 하는 감사만 입술에 남습니다.

 

데우랄리로 가는 길에 만난 또 다른 포터. 커다란 파이프를 메고 계단을 오르는 포터의 모습이 거의 묘기에 가깝습니다. 큰 파이프 하나를 어깨에 메고 움직이기에도 벅찰 것 같은데 그 파이프를 여러 개 묶어 이마에 끈으로 얹고 각도를 조절하면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원숭이 한 마리. 얼굴 주위의 흰털로 보아 긴꼬리원숭이과의 한 종인 네팔회색랑구르로 보입니다. 도시에 있는 사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원숭이들과는 다른 종입니다. 네팔, 인도, 중국, 부탄 등에 분포하는 종으로 나무 열매를 따 먹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지나가도 개의치 않습니다. ABC 트레킹에서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습니다.

 

저 멀리 데우랄리 산장이 보입니다. 문제는 목적지가 눈에 보여도 그곳까지 도달하는 데는 한 시간 가량은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고개가 넘으면 끝이겠지? 하며 고개에 올라서면 또 다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고, 계단을 올라서면 또 다른 오르막이 기다리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간들거림의 연속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압도적인 환경에서의 희망 고문과는 결이 다르지만 몸에 남은 힘을 쥐어 짜내야 하는 오르막 길에서는 기대와 실망의 연속은 힘을 더욱 빠지게 합니다.

 

데우랄리 도착 전 마지막 고비라 할 수 있는 힌쿠 동굴(Hinku Cave)을 지나는 계단에 들어섭니다.

 

정오를 지나 오후로 넘어서는 시간, 맑은 하늘은 잠깐이었고 계곡에는 벌써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힌쿠 동굴(Hinku Cave)이라고 하지만 동굴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바위 아래를 통과하는 계단 길입니다. 그래도 벽이며 계단이며 꼼꼼하게 정비해놓은 깔끔한 길 덕택에 그저 계단과만 씨름하면 됩니다.

 

지친 몸과 무거운 배낭을 끌고 절벽에 붙은 계단길을 오를 때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눈 앞의 계단만 바라보며 노래 박자에 맞추어 걸음을 옮기다 보면 아득하던 계단도 어느덧 올라와 있는 마법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맑은 가을 하늘을 밀어내면서 계곡으로 밀려드는 자욱한 안개 위를 걷다 보면 신선의 세계에 들어서는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힌쿠 동굴에 올라서서 배낭을 벗고 잠시 쉬며 동굴 위를 바라봅니다. 힌쿠 동굴이 딱히 동굴이랄 것은 아니지만 긴 계단 이후에 맛보는 성취감을 맛보기에는 충분합니다. 이 곳에서는 한 그룹의 어르신들을 만났는데 한 할아버지의 나이를 물으니 75세라는 것이었습니다. 와우! 하며 놀라고 있는데 금연하고 소식하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시더군요.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우리도 저 나이에 건강한 육체로 가고 싶은 곳을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분들을 MBC를 지나 ABC로 가는 길에서 그다음 날에도 만났는데 그때는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아니면 체력이 힘드셨는지 할아버지의 표정이 영 좋지 않으시더군요. 

 

데우랄리로 떠나면서 바라본 힌쿠 동굴(Hinku Cave)의 모습입니다. 배낭을 벗어 놓고 쉴 수 있는 쉼터도 있는 공간입니다.

 

힌쿠 동굴을 지나면 데우랄리 직전까지 3,100m 고도의 평탄한 길을 걷습니다.

 

데우랄리 산장 근처로 갈수록 모디 계곡(Modi Khola)에 가까이 붙어 길을 걷습니다. 촘롱부터 계곡 옆을 따라 걸었지만 계곡 본류를 보기는 처음이네요. 

 

3천 미터가 넘는 고도를 걷다 보니 역시 나무숲보다는 돌과 바위길을 지나고 계곡을 지나는 다리들도 거친 모습입니다. 다리를 먼저 건너가서 일행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안전을 확인하는 광경이 정겨워 보입니다. 

 

정말로 간이 다리입니다. 굵은 통나무를 몇 개 걸치고 작은 나뭇가지를 엮은 다음에 풀과 흙을 얹은 다리입니다. 다행히 앞선 사람들이 안전하게 건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난간이 없는 간이 다리를 이용해서 문제없이 계곡을 건넜지만 문제는 그다음 다리였습니다.

 

멀리서 보기에 비슷한 다리라서 조금 위험하게 보였지만 아무 생각 없이 서커스 하듯 다리를 건넜지만 다리를 건너고 보니 이용하면 안 될 다리였습니다.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는 통나무 위를 덮었던 작은 가지와 풀과 흙이 흘러 내려가서 아래가 훤히 드러난 상태였던 것입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저 다리를 건너는데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던 통나무들조차 크지 않은 것들이라 흔들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아래로 향해서 혹여라도 미끄러워 넘어지는 것을 대비하면서 다리를 겨우 건너고 보니 이런 위험한 다리를 사람들이 건넜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 근처를 보니 유량이 많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징검다리로 계곡을 건넌 흔적이 있었습니다. 다리를 건너려던 옆지기를 급하게 멈추게 하고 징검다리로 계곡을 건너게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초록빛의 대나무와 녹음을 유지하던 숲이 있었던 뱀부의 풍경과는 달리 3천 미터 고도의 데우랄리 근방은 확실히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들꽃의 군락지인데 꽃이 핀 상태로 서리를 맞아 이제는 잎과 줄기 조차 누렇게 마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꽃이 한창일 때의 이곳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장관 일듯 합니다.

 

눈앞에 데우랄리 산장이 보이는 마지막 오르막 길을 오르면 오늘의 목적지인 데우랄리에 이릅니다.

 

드디어 데우랄리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계곡을 타고 안개가 맑은 가을 하늘을 뒤덮고 있지만 긴 산행 끝에 만나는 산장의 모습은 정말 반가운 마음 한가득입니다.

 

데우랄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바위산의 모습입니다.

 

데우랄리(Deurali, 3,230m) 표지판입니다. MBC까지 2시간이라는 표지가 있습니다. 맑은 날씨를 무색하게 하는 안개가 산장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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