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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 걷기 6일 차입니다. 원래의 계획은 라 파울리(La Fouly)에서 버스를 타고 이쎄르(Issert)에서 내려서 위의 지도에서 적색 경로를 따라 걸어서 셩벡쓰 호수(Chanpex-Lac)를 거쳐서 포르클라 고개(Col de la Forclaz, 1,526m)를 지나서 트리앙(Trient, 1,279m)에 이르는 20Km가 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제 옆지기가 힘들어한 몸 상태로는 무리겠다 싶어서 오늘 하루는 아예 걷지 않고 대중교통으로만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하루를 쉬고 여정을 이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저희는 다음 숙소를 예약해 놓았으므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다음 숙소까지 가는 교통편을 어제 밤늦게까지 모두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 방법은 우선 라 파울리(La Fouly)에서 버스를 타고 오흑시에흐(Orsières) 터미널까지 이동합니다. 오흑시에흐에서 기차를 타고 마흐띠늬(martigny)까지 가는데 셈브란체(Sembrancher)에서 환승합니다. 마흐띠늬에서 하루에 3~4회만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트리앙(Trient)으로 이동하는 경로입니다. 비싸기는 했지만 대중교통 경로가 존재한다는 것이 감사했죠. 의도치 않게 스위스의 다양한 풍경과 생활상을 접할 수 있었고 산악열차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마야 조예 산장(Maya-Joie)에서의 조식은 좋았습니다. 토스트와 주스, 요플레와 시리얼, 그리고 커피까지 어제 힘들어했던 옆지기도 씩씩하게 먹고는 걸을만하다고 했습니다. 걷지 않고 버스와 기차로 이동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숙소를 나서는 발걸음만은 가벼웠습니다.

 

숙소를 나선 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뇌브 빙하(Glacier de l'A Neuve). 아침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글쓰기 얼마 전에는 알프스 빙하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피졸 빙하가 더 이상 빙하로서의 존재가 없다는 것에 열린 이벤트였지만 앞으로 전망은 더욱 비관적입니다. 문제는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빙하가 사라지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곧 인류의 존속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의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습니다.

 

등산로 표지판이 어지럽게 붙어 있습니다. TMB 외에도 다양한 지역 트레일이 있기 때문인데 스위스 지역에서는 초록색 TMB 로그가 붙어 있는 화살표를 따라가면 됩니다.

 

라 파울리(La Fouly) 버스 정류장에 나오니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TMB를 걷는 사람들, 수학여행 온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까지 과연 모두 탈 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희는 조식 먹고 천천히 나오느라 두 번째 버스인 08:18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스위스 버스는 특별한 패스를 이용하지 않는 한 거리별로 요금이 차등 부과됩니다. TMB의 다른 구간인 프랑스 샤모니나 이탈리아 쿠르메이유 처럼 정액제라면 편리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나라 법이 그러니 하는 수 없죠. 다만 버스 내 정류장 안내는 좋았습니다. 샤모니나 쿠르메이유에서는 정류장 안내가 없어서 노선도와 정류장 표시를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버스의 종점인 오흑시에흐(Orsières Gare)에서 내리면 됩니다. 중간에 저희가 원래 내려서 걸어가려 했던 이쎄르(Issert)에서도 많이들 내리시더군요.

 

오흑시에흐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낭을 멘 대부분의 사람들이 터미널에 정차해 있는 다른 버스에 옮겨 타려고 뛰어 나갑니다. 바로 셩벡쓰 호수(Chanpex-Lac)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기차역에서 셈브란체(Sembrancher)로 가는 기차에 바로 승차했습니다. 버스 내린 곳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열차 승강장으로 개찰구도 없고 역무원도 없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누구든 쉽게 무임승차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저희는 미리 예약해 놓았지만 승차권을 꺼낼 일은 없었습니다. 가격도 비싸서 벌금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무임승차하는 사람도 많고 적발도 많다고 합니다.

아무튼 열차 내에 탁자에 그려져 있는 노선도를 보니 저희가 이동하는 경로가 명확했습니다. 정거장 개수도 많지 않은 산악 열차는 이름이 세인트 버나드 익스프레스(St. Bernard Express)인데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세인트 버나드는 개의 품종 이름인데 바로 스위스의 국견이라 불리는 인명구조견의 대명사입니다. 목에 술통을 매달고 있는 모습으로 유명하고 어릴 적 만화 속에 나오는 파트라슈도 이 품종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희가 갈 마흐띠늬(martigny)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세인트 버나드 패스를 오가는 여행객을 구조하기 위해서 길러졌다고 합니다. 눈 깊이 파묻힌 부상자를 찾아내고, 자신의 체온으로 부상자를 살펴주고, 팀을 이루어 부상자의 위치를 알릴 뿐만 아니라 산사태를 미리 감지하는 등 이 지역에서 수천 명의 인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개에게 성인의 칭호를 부여하다니 개의 활약이 대단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목에 단 술통에는 포도주나 위스키, 브랜디 등을 담아 부상자가 체온을 유지하도록 돕는다고 합니다.

 

열차는 곧 출발했습니다. 열차 창밖으로는 저희와 같은 버스를 탔던 분들이 셩벡쓰 호수(Chanpex-Lac)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있었습니다.

 

산악 열차를 타고 계곡을 달리며 차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셈브란체(Sembrancher) 역에서 내려서 저희가 타고 온 열차는 보내고 마흐띠늬(martigny) 행 열차를 기다립니다. 플랫폼을 이동할 줄 알았는데 같은 승강장에서 편리하게 환승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스키어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스라고 합니다.

 

셈브란체(Sembrancher)에서 마흐띠늬(martigny)행 열차로 갈아탑니다.

 

열차 내부는 깨끗하고 쾌적했습니다. 지불한 운임에 비해 짧은 이동 거리가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열차 창문으로는 다양한 풍경이 들어왔습니다. 특이한 형태의 공동묘지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경사 급한 산지에 조성한 포도밭이었습니다.

 

산행 중에 만난 산지에서는 대부분 양과 소를 위한 목초지였는데 시내 근처로 오니 대부분이 포도밭이었습니다. 산지가 많은 스위스에서는 일정 각도 이상의 경사지에 조성한 포도밭에 대해서는 직불금을 통해서 해당 농사를 지속하도록 지원한다고 하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땅에 포도밭이라니,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마흐띠늬(martigny) 시내로 들어오니 경사진 밭의 규모는 엄청납니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마흐띠늬(martigny) 역에 도착했습니다. 승차권은 꺼낸 적이 없고, 역무원이나 검표원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이 역을 통해서 프랑스 샤모니로 갈 수도 있고 마터호른이 있는 체르마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역 바로 옆에는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쉽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맨 꼭대기에 트리앙으로 가는 213번 버스가 적혀 있습니다.

 

문제는 버스 시간인데 위의 표에서 보듯이 트리앙(Trient)으로 가는 버스는 기간에 따라 하루에 딱 4회만 운행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시내 구경할 수는 없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여행 정리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휴식 시간을 갖기록했습니다. 땡땡이 치고 있는 오늘과 걷기 여행 마지막인 내일은 변수가 많은지라 아무래도 전략이 필요하기는 했습니다. 마흐띠늬(martigny)는 조용한 중소도시의 모습이었습니다. 스위스-이탈리아, 스위스-프랑스를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는 도시로 우리나라 읍면 정도의 인구지만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역전 카페라 비쌀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비싸지 않았습니다. 커피와 콜라 각각 3.5 CHF로 두 잔 시켜놓고 두 시간을 있는데도 눈치 주지 않았으니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어제 스위스 산장에서는 이것의 두배 가격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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