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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쿠르메이유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경계인  페레고개(Grand Col Ferret, 2,537m)를 지나 라 파울리(La Fouly)에 이르는 TMB 걷기 5일 차 여정은 이제 후반으로 접어듭니다. 

 

라푈레 목장 및 산장(Gite Alpage de la Peule)에서의 충분한 휴식 시간 이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는데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던 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의 지시에 따라서 소몰이 개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소를 모는데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가끔 어떤 소는 개가 쫓아다니며 짖어 대는 게 싫은지 뿔을 흔들며 개를 위협하지만 소몰이 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소를 몰았습니다. 소목에 달린 워낭 소리, 소몰이 개가 짖는 소리가 섞이며 평화로웠던 계곡은 분주한 시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길지 않지만 당시의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아마도 소젖을 짜는 시간인 모양이었습니다.

 

소젖 짜는 장비가 갖추어진 트레일러 같은 곳으로 소가 한 마리씩 들어가면 내부에서 사람이 소의 유방을 소독하고 젖을 짤 준비를 한 다음에 유축기를 부착해서 젖을 짜는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소몰이 개는 이곳에서도 역할을 하는데 트레일러 앞에서 소가 머뭇거리며 들어가지 않으면 빨리 들어가라고 짖습니다. 또, 트레일러 반대쪽에서는 젖을 짠 소가 머뭇거리지 않도록 빨리 나가라고 짖어 대면서 교통정리를 합니다. 트레일러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위생 복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상태로 구경하는 우리를 가끔씩 힐끔 쳐다보며 일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덩치 큰 소들이 어떻게 사람의 손을 거의 거치지 않고 한 마리 한 마리 젖 짜는 트레일러로 알아서 오는지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소몰이 개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움직이니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저 소들이 화가 나면 불가능한 일일 텐데, 저 소들은 자신의 젖을 자발적으로 내주는 건지, 빼앗기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별의별 상상을 해보아야 소용없는 일이긴 합니다. 우유를 짜는 젖소는 사람처럼 송아지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암소입니다. 결국 이 농장에서 지금 젖을 짜려고 대기하고 있는 소들은 모두가 암소이고 인공수정과 출산의 과정을 거친 소들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약 280일의 임신과 출산 후 약 305일의 우유 생산이지만 지속적인 우유 생산을 위해서 암소들은 거의 매년 출산을 반복하다가 7~10년의 짧은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그나마 수소들은 송아지 고기를 팔리거나 육우로 생을 마치지요. 아름다운 알프스의 자연 속에서 살지만 우유 산업에 종속된 것은 우사에서 자라는 소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스위스를 세계 최고 품질의 우유 생산국이라 하는데 이 농장처럼 넓은 초지에서 중소 규모로 소를 키우고 착유 과정을 위생적으로 하는 덕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유 품질을 이야기할 때 "체세포"를 말하는데 말이 체세포지 알기 쉽게 말하면 유방의 염증에서 오는 젖 고름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최소화시켰다는 말입니다. 최고 품질의 우유라 해도 최소화시키기는 하지만 젖 고름이 없는 우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염증 때문에 항생제도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라 파울리(La Fouly)로 가는 길은 소들이 젖을 짜러 들어가는 통로를 가로질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걸어갈 길에는 줄이 가로막고 있고 줄을 들고 지나간다 해도 뿔 달린 커다란 소가 길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소젖을 짜느라 소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줄로 막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몇 분을 왔다 갔다 서성였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그 소는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기다려 보자 하면서 몇 분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예닐곱 명의 한 팀이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들 중 한 분이 줄을 넘어서서 큰 뿔을 가진 소 앞을 마치 평소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소들도 얌전히 가만히 있더군요. 일행들이 따라서 모두 지나가자 저희도 용기를 내어 자연스럽게 소 앞을 지나갔습니다. 막상 소 앞을 자연스럽게 지나고 나니 목동 아저씨가 어떻게 해결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다렸던 우리 자신도 우스웠고, 싱거운 문제 해결에 미소와 함박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우리가 소를 위협하지 않으면 소들도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공존의 묘미를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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