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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랑 산장에서 시작하여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인 세이뉴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 쿠르메이유까지 가는 TMB 걷기 4일 차 일정은 한 여름밤에 내린 눈으로 시작부터 난관이었지만 일단 부딪혀 보자! 하는 각오로 걷다 보니 경로의 상당 부분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천사 같은 분의 도움도 있었지요. 

 

저희 앞에서 길잡이처럼 앞서 가시던 팀도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노란색 두 줄짜리 표식을 따라서 글레이셔 빙하 하단 지역을 통과하는데 폭포 앞에서 표식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등산로 흔적을 찾아보니 폭포 건너편으로 바위에 표시된 두 줄짜리 표식과 망가진 출렁다리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눈사태로 다리가 완전히 망가진 모양이었습니다. 

 

문제는 도통 폭포를 넘어설 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도 아래로도 가파른 암벽 절벽과 가파른 눈길뿐이고 우회할 만한 경로가 없었습니다. 저희를 지나쳐 앞서가던 일본인 부부도 어디로 가야 하나 하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멍하니 서서 그들이 통과하는 모습을 관찰하는데 처음에는 위쪽으로 우회 경로가 있는지 찾아보더니 결국 포기하고 돌아와서는 폴대를 접어서 배낭에 넣고는 물기가 가득한 가파른 바위 위를 올라가더니 두 사람 모두 무사히 계곡을 통과하더군요. 계곡을 통과한 그들이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저희를 보면서 아무 말없이 돌아서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코스를 따라가 볼까 하고 바위를 붙잡고 시도해 보았지만 나에게도 버거울 뿐만 아니라 위험했고, 뒤따라올 옆지기에게는 더욱 위험했기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이번에는 옆지기가 다시 한번 물의 흐름과 지형을 관찰했고 직선 경로로는 커다란 절벽과 같은 바위이지만 바위 몇 개만 내려가면 계단처럼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눈이 여러 개이니 뜻밖의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단점이라면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을 통과해야 하므로 신발이 완전히 젖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렇게 해서라도 이곳을 통과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바닥에 흐르는 물을 첨벙거리며 폭포를 지나기 시작했습니다. 미끄러지지만 않으면 신발 젖는 것은 대수가 아니었습니다. 미끄러지면 폭포를 따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위에 붙잡을 수 있는 바위를 붙잡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폭포를 건넜습니다. 결과적으로 신발이 젖기는 했지만 일본인 부부가 넘어간 코스보다 훨씬 안전하게 폭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위기 앞에서는 자존심이나 소위 객기를 부리며 서둘러 무리하기보다 차분히 멈춤의 시간을 갖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무런 피해나 손해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면 더 큰 문제가 손쉽게 해결될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발은 젖었지만 이제 이보다 더한 장애물이 있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힘차게 길을 이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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