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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 3일 차 걷기는 정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눈 비탈에서 굴러 떨어지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한 행운으로 손등이 다치고 무릎이 긁힌 것은 로베르 블랑 산장에 도착한 이상 영광의 상처일 뿐입니다. 엉덩방아로 넘어지고 긁히고 스틱이 구부러 지는 것은 그저 하찮은 일일 뿐입니다. 정식 TMB길이 아니기에 등산로 표식을 찾아 길을 헤매며 요새와 같은 로베르 블랑 산장(Refuge Robert Blanc, 2,750m)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녁 8시가 넘는 시간에 산장에 도착했으니 산장의 저녁 식사는 모두 끝난 시각이었지만 젊은 산장 지기는 산장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직전 산장이었던 본옴므 산장에 비해면 작은 산장이기에 등산화와 스틱을 벗어 놓은 공간과 개인 사물을 담는 플라스틱 바구니, 그리고 개인별 슬리퍼까지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버너를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도 미리 안내해주는, 식사를 실내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해발 3천 미터에 가까운 산장에 묵으면서 누리는 호사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산장 체크인을 하고(1인당 식사 없이 숙박만 15유로에 예약했습니다) 저녁 준비를 하느라 왔다 갔다 하는데 저희 보다도 늦게 산장에 도착한 팀이 있었습니다. 젊은 두 남녀 커플이었는데 산장에 들어오는 여성분은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하면서 울며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내일 저희가 갈 세이뉴 고개(Col de la Seigne)로 가는 방향인데 이 커플은 저희와 반대 방향으로 세이뉴 고개에서 로베르 블랑 산장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여성분이 덩치가 작은 것도 아니었는데 산장 체크인을 기다리면서 한 동안 남자 친구인지 남편인지 모를 남성분의 무릎에 올라앉자 한참을 있더군요.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내일 당장 우리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남자 친구에게 꼬심을 받았는지 왜 이 코스를 선택해서 걸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이 커플이 오늘 겪은 "오 마이갓!"은 내일 겪을 저희의 미래이니까요. 반면에 이 커플이 내일 겪을 미래를 생각하니 애잔한 염려가 다가왔습니다. 고된 지옥 훈련이 될 텐데...... 한 발만 잘못 디디면 한 길 낭떠러지로 구르는 현실을 마주할 텐데, 미끄럽게 흘러내리는 바위 파편들이 뒤덮인 산등성이를 넘어야 할 텐데, 그곳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내가 발로 걸어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그 커플에게 차마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잘, 안전하게 가셨기를......

  

절벽에서 걸쳐있듯 위치한 로베르 브랑 산장(Refuge Robert Blanc)에서 산장 식당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도 일품입니다. 여름이라 저녁 9시에 가까운 시각임에도 산장 식당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산장이지만 모두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은 시각입니다.

 

저희가 배정받은 곳은 16명이 들아가는 곳으로 양쪽으로 2층 침상이 있는데 한쪽에 8명, 1층에 4명 2층에 4명이 잠자는 곳이었습니다. 저희는 2층에 둘이서 나란히 누울 수 있었습니다. 다들 이미 취침 중이라 최대한 조용히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이 피곤했는지 곤한 잠을 잤고 새벽에 제일 일찍 일어나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여름에만 운영한다는 로베르 블랑 산장은 식수는 샘물을 따로 공급하고 다른 허드레 물은 빙하수를 공급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신발과 스틱을 벗어 두는 공간으로 이곳에서 취사할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습니다. 버너를 이곳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해 주니 얼마나 고맙던지...... 다시 TMB를 걷는다면 힘든 것만 빼면 이 산장은 꼭 들르고 싶은 산장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자신이 까먹어서 받지 않았다고 동전을 몇 개 받아 갔지만 이것 또한 저렴한 숙박비에 비하면 애교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로베르 블랑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정말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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