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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MB가 아닌 경로를 걷고 있는 TMB 걷기 3일 차는 두려움과 놀라움과 감격이 이어지는 길입니다. 푸흐 북쪽 봉우리(Tete Nord Des Fours, 2,756m)를 지나서 벨라발 봉우리(Têtes des Bellaval)를 앞에 두고 산 허리를 걷다가 벨라발 봉우리를 지나서 산허리를 따라 벨라발 계곡을 지납니다.

 

푸흐 북쪽 봉우리(Tete Nord Des Fours, 2,756m)를 지나면서 발므 산장 쪽의 계곡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산등성이에서 깎여나간 돌과 바위들이 산 무더기입니다.

 

눈 앞에서 길을 탁 막아 버린 바위 덩어리. 이걸 어떻게 넘으라고! 몇 걸음 앞에서 보면 난감하지만, 또 막상 바위 앞에서 길을 찾아보면 사람들이 지나간 갈 만한 길들이 있습니다.

 

바위를 넘으니 돌길 너머로 멀리 조베 호수가 보입니다. 바로 이런 길 때문에 튼튼한 등산화를 신어야 하긴 합니다. 돌에 걸리거나 미끄러져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조심조심 걸음을 옮깁니다.

 

푸흐 북쪽 봉우리 이후에는 내리막이거나 산허리를 걷는 것이기 때문에 경사도 높은 오르막이 많지 않아 힘이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문제는 중간중간에 있는 복병과도 같이 존재하는 경사도 높은 고개와 눈길이었습니다. 봉우리에서 내려오니 멀리 눈길 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들이 눈길을 한참 걸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누군가를 기리는 표지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푸흐 북쪽 봉우리와 이어지는 스키 슬로프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코스를 개척한 사람의 이름을 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스키를 타기 위해서 어디서 출발했고 어떻게 내려왔으며 상태가 어떻다는 글을 스키 타는 모습과 함께 남겨 놓는 사이트가 있는데 둘러보니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과 함께 겨울철 눈 위를 자유롭게 활강하며 내려오는 이들을 보면 한 구석 부러움이 남습니다.

 

아찔한 눈길을 앞두고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한 걸음씩 옮기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스틱을 잡고 한 걸음씩 옮기는데 뒤에서 옆지기는 엉덩 방아를 찧으며 힘들어합니다. 스키어들에게는 몇 초도 걸리지 않을 길이지만 아이젠도 없는 저희는 그저 등산화를 쾅쾅 세게 밟아 미끄러짐을 최소화하고 스틱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눈이 푹푹 들어가는 구간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기는 했습니다.

 

가끔 안전하다 싶은 곳에서는 아이가 된 것처럼 그냥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미끄럼을 타는 것이 편하게 내려오는 방법이었습니다. 비료 포대 하나만 있으면 정말 딱인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희 앞에 일행이 두 팀이나 있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앞선 사람들이 길의 안전이나 방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것이니 까요. 그렇지만 그들이 저희 시선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워낙 저희가 거북이걸음이었니까요.

 

드디어 처음 만난 로베르 블랑 산장의 표식입니다. TMB 마크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두 줄짜리 노란색 페인트 표시가 경로임을 나타내 줍니다. 두 줄 노란색 표시를 바위나 조금 큰 돌에 표시해 놓았기 때문에 길이 분간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런 표식을 잘 찾아야 합니다.

 

오늘은 온통 바위와 돌, 눈길뿐이었는데 이렇게 초록색 들판도 만납니다. 야생화가 펼쳐진 언덕을 배경으로 아침에 물을 부어 놓은 즉석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즉석밥을 계속 먹다 보니 특유의 조미료 맛 때문인지 조금씩 물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레 꽁따민드 슈퍼에서 구입한 바게트와 소시지 간식 등이 남아 있었고 맨밥에 볶음 고추장을 비벼 먹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고추장의 위력에 감사했죠. 

 

벨라발 봉우리(Têtes des Bellaval)에서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넘을 때 바라본 내리막 길입니다. 아무리 경사가 급한 길이라도 이 악물고 한 발짝씩 이동하면 통과할 수는 있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한 고비를 넘어서면 또다시 다가오는 아찔함은 그냥 어이가 없게 만듭니다. 고개를 힘들지만 잘 올라왔다 안도하는 순간 다가오는 아찔한 지그재그 내리막입니다. 돌이 부서진 흙으로 이루어진 이런 길이 이쪽 경로에서는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데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벨라발 봉우리의 산등성이 고개를 넘으면 눈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봉우리들입니다. 앞쪽의 봉우리는 벨라발 계곡의 원천인 몽 통뒤(Mont Tondu, 3,196m)이고 뒤쪽에 거대한 빙하를 품고 있는 것은 글레이셔봉(Glaciers, 3,816m)입니다. 글레이셔봉 자락에 오늘의 목적지인 로베르 브랑 산장이 있습니다. 몽 통뒤 좌측으로는 조베 호수 쪽에서 넘어올 수 있는 고개(EnclaveCol d'Enclave)가 있어서 저희가 가고 있는 경로와 만납니다.  

 

멀리 아주 작은 호수가 있는 옆쪽으로 지나가야 합니다. 눈길을 한참 통과해야 합니다. 조베 호수 쪽에서 넘어오는 길도 연못 근처를 통과해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저 지점에서 하산하면 모테 산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저희 앞쪽에서 가던 사람들은 대부분 모테 산장 쪽으로 내려가더군요. 결국 그 이후는 오로지 저희 힘으로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한 여름에 눈길 걷기가 처음에는 신기해서 인증숏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고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만나는 눈길은 고난의 행로 그 자체였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눈 비탈에서 녹고 있던 눈에 미끄러지면서 얼마간을 굴렀습니다. 비탈에서 배낭을 멘 채로 굴러 떨어지는데 스틱을 찍어도 멈추지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가는 구나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되지 하면서 스틱을 다시 힘차게 찍었는데 그제야 겨우 멈출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무릎이 긁히고, 왼쪽 손등이 얇게 찢어지는 가벼운 부상을 입었습니다. 갈길이 먼데 그 정도였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스틱은 굽어져서 지금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더욱 조심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에서 저를 따라오는 옆지기의 경우도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조심히 걷다 보니 속도가 나질 않았습니다.

 

벨라발 계곡에 있는 아주 작은 호수를 지나면 약 백여 미터의 오르막을 완만하게 오릅니다. 이른 시간에 출발했지만 전진 속도는 참으로 더딥니다. 이곳에서 표지판 다운 표지판을 거의 처음 만납니다.  물론 TMB 표식은 없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 2시간 45분이나 남았다고 하니 마음이 급해집니다. 저희는 거의 두배를 계산해야 하니 까마득한 거죠. 실제로 거의 8시가 다 되어서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한 여름에 눈길 걷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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