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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겨우 겨우 저녁을 먹고 취침에 들었던 옆지기가 오늘 아침에는 걸을만하다며 씩씩하게 나오는 모습을 보면 편하지도 않고, 샤워를 할 수도 없는 열악한 산장에서의 하룻밤도 사람의 몸을 저렇게 회복시킨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TMB 이틀 차는 16.8Km라는 상당히 긴 거리를 걸어 본옴므산장(Refuge de La Croix du Bonhomme)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단 트휙 산장을 떠나 레 꽁따민느(Les Contamines) 시내까지 내리막 길을 내려가는 것이 1단계이고, 평탄한 레 꽁따민느 시내를 걷는 2단계, 본옴므 고개까지 오르막을 오르는 마의 3단계, 그리고 고개에서 산장까지가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단계인 레 꽁따민느 시내까지는 위의 지도의 등고선에서도 알 수 있듯이 500m 내외의 고도를 낮추는 완전한 내리막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가끔 만나는 임도의 모습과 비슷한 내리막 길입니다. 임도 중간중간 빗물이 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배수로도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것과 비슷합니다.

 

임도를 룰루랄라 30분 정도 내려오면 마슈레(Macherey, 1,585m)라는 곳에서 숲길로 내려가다가 다시 임도와 만납니다. 다시 임도와 만나니까 계속 임도를 따라 편한 길로 가도 되기는 하지만 이 숲길은 걷지 않았으면 후회할 만큼 훌륭한 길이었습니다. 임도가 중간에 다른 길로 갈라지기 때문에 헷갈릴 우려가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이 숲길은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한 독특한 생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슈레 교차로에서 들어가는 숲은 키가 큰 가문비나무와 낮은 관목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숲입니다. 키 큰 나무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다행히 떨어진 가지가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일본 교토의 구마노 걷기를 하면 끊임없는 삼나무 숲을 만나는데 그 삼나무 숲 바닥은 어떠한 생명도, 향기도, 소리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 삭막한 풍경인데 이곳은 숲은 키 높은 가문비나무로 쌓여 있지만 아래는 관목으로 마치 카펫처럼 깔려 있습니다. 향기와 소리도 매력적인 숲입니다.

  

레 꽁따민느 몽주와 자연보호구역(La réserve naturelle des Contamines-Montjoie)의 표지판입니다. 1,100m 이상의 상당히 넓은 지역인데, TMB 코스의 상당 부분도 이 보호 구역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모트, 아이백스 등 87종의 동물들과 660여 종 이상의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중에도 으뜸은 가문비 나무라고 합니다.

 

동화 속 숲 속 마을과 같았던 숲길을 지나면 다시 도로를 만나서 수월하게 내리막을 걷습니다.

 

표지판 중 유일한 TMB 경로인 레 꽁따민느(Les Contamines)를 향해 걷습니다.

 

비포장 도로를 걷지만 이른 아침의 주위 풍경은 환상적입니다.

 

TMB 코스에서 많은 경우 야생화가 피어 있는 들판이나 깎아지른 바위산, 아직 녹지 않은 설산과 함께 걷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리막 길에서 바라보는 울창한 숲의 아름다움은 거의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멀리 레 꽁따민느(Les Contamines)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집들이 마치 전원주택 단지처럼 깔끔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아이백스와 설산을 상징처럼 그려 넣은 레 꽁따민느 자연보호구역(La réserve naturelle des Contamines-Montjoie)의 표지판과 앞서 지나온 트휙 산장, 마아주 산장의 표지판도 있습니다. TMB경로는 15분 거리의 시내 중심을 관통합니다.

 

길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Eau Potable"는 식수라는 표지입니다. 식수이니 마셔 주어야죠. 출발할 때는 조금은 서늘했는데 마을 입구에 도착할 무렵에는 오전 8시 무렵인데도 땀이 줄줄 흐르는 상태입니다. 얼마나 시원하던지, 열이 오른 손바닥에 시원한 물만 적셔도 시원했습니다.

 

이 동네의 집들은 집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도 있지만, 화분의 꽃으로 집을 장식하고, 잔디를 깔끔하게 다듬는 것뿐만 아니라 나름의 유머도 있었습니다. 조금 세월을 보낸듯한 창고와 같은 건물 벽에 하트 모양의 통풍구를 내어 놓았더군요. 개인 주택도 있지만 이 지역은 머물 수 있는 숙소가 많으므로 트휙 산장이 아니라 이곳까지 내려와서 1박을 하는 것도 방법이었겠다 싶었습니다.

 

18세기에 세워진 레 꽁따민느-몽주와 트리니티 성당이 보입니다. 시내 중심에 거의 다 왔습니다. 성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점들과 식당, 슈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당 뒤에는 사미벨의 정원(SAMIVEL'S GARDEN)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시인이자, 소설가이면서도 수채화가 였던 사미벨(Samivel, Paul Gayet-Tancrède)의 작품들을 야외에 전시하고 있는 작은 공원입니다. 어린 시절 이곳을 방문해 받은 깊은 인상으로 꾸준히 이곳을 다녀갔다고 합니다. 자연보호, 특히 산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그가 그린 수채화 작품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레 꽁따민느-몽주와 트리니티 성당(Eglise de la Sainte-TrinitéÉglise de la Sainte-Trinité des Contamines-Montjoie)에 도착했습니다. 성당 앞 벤치에 배낭을 벗어 놓고 바로 옆 공중 화장실에서 중요한 일도 보고, 근처 슈퍼에 가서 앞으로 3일간 내내 산에서만 있을 예정이므로 필요한 간식거리와 물품도 구매했습니다.

 

성당 한편에 1920년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형태의 기념비. 레 꽁따민느 출신으로 프랑스를 위해 죽은 이들을 기리는 기념물입니다. 1차 대전 때 죽은 이들을 기리며 세워졌지만 이후 2차 대전,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의 희생자까지 이름을 추가하거나 명판을 덧댄 이 기념물입니다. 지역 인물을 기리는데 돈 있는 자, 또한 그 후손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의회가 결정하고 그 기념물이 세워진 과정과 예산을 기록으로 남기는 등 이들은 꼼꼼하네요. 얼마 전 가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자신들이 세운 이런 기념비로 신분을 세탁하거나 만드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았는데 지방 자치단체에서 이러한 기념물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교회 내부에도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명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치 부역자들을 확실히 처단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문화가 잘 정착된 프랑스가 부러웠습니다. 우리나라도 광복 초기 친일 청산이 잘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청산되지 않은 친일 잔재가 기득권으로 우리 사회에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이 답답할 뿐입니다.

 

성당 내부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긴 여정인데 무난히 소화할 수 있도록 기도해 봅니다. 천장에 새겨진 JHS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성당 앞 벤치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입니다. 우측으로 가면 슈퍼가 있고 TMB 경로는 좌측으로 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는 작은 성당들 앞에 세워져 있던 대리석 십자가를 다시 보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입니다.

 

역시 프랑스의 슈퍼들은 저렴합니다. 소시지 4개짜리 1.76 유로, 바게트 1.05 유로, 방울토마토 0.99 유로, 복숭아 4개 1.61 유로, 쨈 2.9 유로 등 슈퍼에 다녀오는 것에 부담이 없습니다. 이때 실수한 것은 초코바나 사탕과 같은 것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돌아보니 이후 3일간의 산행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초코바나 사탕으로 보충해 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상황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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