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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뚜르 드 몽블랑) 관문 역할을 하는 제네바에서 오후 2시 40분에 프랑스 샤모니로 출발하는 버스 시간까지 제네바 시내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엔 본부, 레만호 옆 공원 지대를 거쳐 셔틀 보트를 타고 레만호를 건너서 제네바 제트 분수를 지난 걷기 여정은 이제 말라뉴 공원(Parc Malagnou)에 위치한 자연사 박물관(Muséum d'Histoire Naturelle)으로 향합니다. 

각 나라의 시내를 걷는 것은 그곳을 제대로 경험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호수에서 멀지 않은 시가지는 각종 상점과 식당들이 몰려있는 번화가입니다. 

 

호수로(Rue de Lac)에 위치한 미그로스(MIGROS) 슈퍼에서 점심용 샌드위치용 음료수 등을 구매해서 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저희는 환전한 스위스 프랑으로 결제했지만 스위스의 슈퍼나 편의점에서는 유로를 받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로화는 지폐만 받고 잔돈은 스위스 프랑으로 주는 방식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C'EST OUVERT, 열려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이고 있는 이 슈퍼마켓은 스위스에서 독보적인 점유율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데 재벌의 소유가 아니라 협동조합 이랍니다. 인구의 거의 30%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는 조합이니 이곳의 주인은 국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박물관 가는 길에 만난 고풍스러운 건물. 이곳 사람들의 출생, 결혼, 신분카드 등을 다루는 시민 서비스 센터(Citizen services Center)라고 합니다. 

 

시민 서비스 센터 옆 광장에는 이곳에서 일했던 의사 마르틴(Edouard Martin)을 기념하는 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기관을 아내와 함께 세우고 의원으로서 정치인의 삶을 살기도 했던 인물인데 지역 주민들이 세웠다고 합니다. 지역의 인물들을 기리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인물만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이들을 기리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언덕길을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힘에 부치니 앞으로가 더 캄캄합니다. 아무튼 오르다 보니 나무 숲이 우거진 공원 지대에 도착했습니다. 문제는 출입구 방향을 정문 반대편으로 잘못 파악해서 엉뚱한 길로(Rue François-Grast)로 오고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화위복이라고 박물관 뒤편에 있는 말라뉴 공원(Parc Malagnou)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놀이터를 지나 숲 속의 산책로를 걷다가 베치에서 잠시의 여유를 누려 보기도 합니다.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간이 탁구대도 있고 조용한 공원이었습니다. 

 

말라뉴 공원 한편에 있던 철제 조형물.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입구가 철제 대문으로 닫혀 있고 열리지 않았습니다. 출입문 옆에 CCTV와 도어록이 있는 박물관이라!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고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정식 출입문이 아니라 직원용 출입문이고 박물관은 건물 앞쪽으로 돌아가라는 표지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건물 앞 뒤로, 즉 말라뉴 공원과 박물관 입구를 연결해주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박물관 앞마당에 놓인 황소상(Luc Jaggi, 1947)

 

공원에는 개의 배설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비닐봉지를 걸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 카니네트(caninette)는 프랑스 파리에서 개똥 청소에 사용하던 것으로 오토바이에 진공청소기를 달아서 개똥을 치웠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단속과 벌금을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방법이 있어야겠습니다.

   

드디어 자연사 박물관(Muséum d'Histoire Naturelle)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정원으로 바로 왔으면 체력은 조금 절약했겠지만 말라뉴 공원은 보지 못했겠지요.

 

자연사 박물관은 무료입장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엽니다.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많았지만 어른에게도 상당히 유익한 장소입니다. 아쉬웠던 점은 사물함 보관소가 없어서 배낭을 둘러 맨체로 전시실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배낭을 제한하거나 사진 찍기를 제한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물론 플래시를 끄고 찍어야 합니다. 입구에서는 여러 동물 표본들이 입장객들을 맞이 합니다.

 

제네바 자연사 박물관에는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니라 동물 박제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제 몇 가지 전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분류와 종류대로 다양한 동물 박제를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보는 동물원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이지요. 박제니까 크지 않은 공간에서도 다양한 동물을 한 번에 전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포유류 중에 번성한 정도를 차트로 보여 주고 있는 곳입니다. 가장 번성한 것은 역시 설치류이고 그다음이 27% 정도인 박쥐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박쥐는 1년에 한 번 새끼를 낳는데 새끼를 품에 안고 다녀서 생존율이 높다고 합니다.

 

빈치류 피갑목으로 분류하는 아르마딜로. 이 동물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위기 때면 갑옷처럼 생긴 몸을 둥글게 만듭니다.

 

새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 오니 동물 박제의 효과가 더욱 확실합니다. 포유류나 조류의 박제를 주로 하는데 동물이 죽으면 가죽만 남기고 내부는 모두 걷어낸 다음 가죽에 방부처리를 하고 내부는 우레탄이나 스티로폼으로 채우는 방식입니다. 박제 제작이 어려운 동물은 포르말린 용액에 넣어서 표본으로 만드다고 합니다.

 

중앙 홀 상단에 매달린 고래뼈. 하나는 범고래의 뼈로 보입니다. 남극과 북극을 비롯해서 전 세계의 바다에서 서식하는데 남극과 북극에서만 서식하는 종이 있고 회유하는 종이 있는데 회유하는 종도 여름철에는 남극과 북극 주변에 먹이가 풍부해져서 이곳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수장룡이나 어룡 같은 물에서 사는 공룡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에서는 공룡을 다루지 않으니 공룡은 아닌 것이죠.  

 

수많은 벌새 종류들. 작은 것은 5Cm에 해당하는 것도 있으나 의외로 20Cm가 넘는 큰 종류도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 320종이 넘는 벌새가 있다고 합니다.

 

앵무새는 종류가 다양할 것으로 생각은 했었지만 총 372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큰 것부터 소형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대형일수록 오래 살고 70~80년까지도 산다고 합니다.

 

다양한 포즈로 전시하고 있는 대형 조류의 박제들.

 

호랑이 박제들은 하나같이 으르렁 거리고 있네요.

 

사물함은 없지만 다행히 카페가 있는 휴게실이 있어서 음료나 간식을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저희는 3 프랑 하는 커피를 하나 사 먹으면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커피가 3프랑이라는 메뉴판을 보고 직원에게 현금을 주었는데 점원은 잔돈과 함께 "1 CAFE"라 적힌 동전을 하나 주는 것이었습니다. 스위스 프랑도 아니고 유로도 아닌 생전 처음 보는 동전에 이건 뭐지! 하는 당황함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동전을 커피 머신에 넣으면 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호!

 

전시실 중앙으로는 대형동물들의 박제가 있었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공간입니다. 어른에게도 다리 아프지 않게 최소의 이동 거리로 다양한 동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알에서부터 올챙이를 거쳐 개구리가 되는 변태 과정을 보여주는 학습 기구.

 

인도 비단뱀(indian rock python)의 뼈. 300개가 넘는 갈비뼈가 있는 것입니다.

 

해양 생물들의 박제를 전시해 놓은 곳. 해양 생물 박제는 육지 동물보다 훨씬 어렵다고 하지요.

 

위의 그림에서 좌측은 코코넛의 전파 과정을 만화 형태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고 우측은 연못과 같은 작은 생태계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를 위치별 버튼을 이용해서 직접 들어 볼 수 있는 부스입니다. 코코넛 열매는 그 자체로 부력이 있고 방수가 되기 때문에 바다 위를 떠다니다가 육지에 닿으면 그곳에서 뿌리를 내려 번식하는 특이한 번식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코코넛의 유전자를 조사한 바로는 코코넛은 크게 키가 작고 달콤한 태평양 코코넛과 키가 커서 야자유나 섬유로 주로 이용하는 인도양 코코넛이 있는데 태평양 코코넛은 고대인에 의해 동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로 전파되었고 인도양 코코넛은 유럽 열강의 정복자들의 의해 서아프리카와 북미, 남미 대륙으로 전파되었다 합니다. 코코넛을 가지고 다니다 우연히 번식했거나 사람이 직접 심은 인위적인 전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코코넛 전파 경로가 관련한 인류의 이동 역사나 신대륙 정복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괴하고 특이한 모양의  초록 숟가락 벌레(green spoon worm)라 부르는 보넬리아(Bonellia viridis)입니다. 암수 결정이 염색체가 아니라 암컷의 몸에 있는 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되는 특이한 동물입니다. 암컷 성체 피부에 있는 녹색의 보넬린(bonellin)이란 물질에 닿으면 다른 생물들의 유생이나 세균은 죽지만 보넬리아의 유생이 닿으면 수컷이 되고 아니면 암컷이 되는 방식입니다. 또 특이한 것은 수컷은 1~3mm의 단순한 막대기 모양으로 아주 작은데 15Cm 정도의 암컷 자궁에 들어가 산다고 합니다. 보넬리아가 특이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과 같은 과입니다. 바로 개불과의 의충동물입니다. 입이 숟가락을 닮았다 해서 숟가락 벌레(spoon worm),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 해서 남근 물고기(penis fish), 중국에서는 동물의 내장 같다해서 해장이라 부르는 개불입니다. 

 

곤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부스. 커다란 모기 모형을 보니 생명의 신비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특한 색상과 캐릭터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는 특별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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