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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은 공항에서도 발휘되는가 봅니다. 공항 보안검사에서 "삐" 소리 없이 그냥 통과하겠지 했는데 바지 후크에 있던 작은 쇠붙이 하나가 쉰 나이의 여행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음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짜증들이 마치 맑은 연못에 흙탕물이 오르듯 잔잔하게 설레던 여행의 시작을 조금은 흩트려 놓았습니다. 보안 검색대에서 "삐" 소리가 나자 젊은 보안 요원이 몸을 훑어 대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흔들린 쉰 중년의 마음은 옆지기가 보안 검사에 걸리지 않도록 준비한 작은 가위에도 굳이 그것을 왜 가져왔냐며 타박을 날립니다. 돌아보면 꼼꼼하게 매뉴얼대로 점검을 수행한 보안 요원의 성실함이었고, 차분하고도 빈틈없는 옆지기의 여행 준비였고, 바지의 후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몸 깊숙이 쌓인 귀차니즘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마음 씀씀이의 부지런함이 있었다면 모든 일을 미소로 기분 좋게 넘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남깁니다. 

인천 공항 1 터미널 탑승구에 마련된 어린이 놀이 시설입니다. 뽀로로와 친구들 캐릭터로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이 이미 모두 커버린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당시에는 해외여행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으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공간이기는 합니다.  

밤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인 데다가 웹 체크인을 해둔 덕택에 체크인과 보안 검사, 출국 수속에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가지고 현지에 가서 현지에 필요한 통화들을 환전할 예정이라 환전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 탑승까지는 1시간 30분 이상 넉넉한 시간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럴 경우 예전 같으면 멍하니 TV 시청으로 시간을 보낼 텐데 이번에는 작은 수첩에 글쓰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여유로운 비행 대기 시간은 지천명에 떠나는 배낭여행의 시작을 글쓰기로 채우는 즐거움을 선사해 줍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의 지천명(知天命)이 단순히 산술적으로 나이 쉰을 나타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삶의 소명과 참 목적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되길 바라며 펜을 들었습니다. 

상대와 말로 마음을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도 있지만 작은 수첩에 글을 써내려 가다 보니 종이를 상대방 삼아 글로 마음을 써 내려가는 쾌감은 오늘 인천공항 탑승구에서 누리는 선물인 듯합니다. 장편의 소설을 써 내려가는 전문가의 글쓰기 노동도 아니고 깔끔한 필치를 뽐내는 수필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모니터와 키보드를 벗어난 아날로그 감성의 글쓰기 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전화와 인터넷에 매달리거나 속박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저 손가락과 펜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마음의 평화. 쉰 나이에 떠나는 배낭여행에서 글쓰기로 누리는 즐거움입니다. 잡념을 잘라버리고 머리에서는 펜을 움직일 다음 단어들을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여행 중 글쓰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 탑승한 비행기에서 탑승을 환영한다는 문구에도 반가움이 짙게 베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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