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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반란이 시작되는가?" 제목만 보면 무슨 정치 글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무협 소설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이 글은 한 마지기 논에서 일어나는 끈질긴 생존의 역사일 수 있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 매일 주식으로 먹는 쌀이 식탁에 오르기 까지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그 위대한 생명의 서사시의 귀퉁이를 여는 이야기 일수 있다.

요즘은 경지 정리와 함께 기계화된 영농으로 트랙터로 논을 갈고, 이앙기로 모를 심고 제초제가 풀 뽑기를 대신하는 시대지만, 경운기로 논을 갈고 가족이 못줄을 대고 손으로 모를 심은 우리 논에는 가을이면 벼 사이로 삐죽 삐죽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피" 덕분에 아마추어 농부 티를 제대로 내고 만다. 올해 모내기를 한지 3일이 지난 논에는 그 가을의 잔혹사를 준비라도 하듯 벌써부터 "피"가 삐죽 삐죽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폭염에 땅의 온도가 올라가고 피가 발아하기에 적당한 날씨였나 보다. 물을 깊이대면 잡초가 상당히 줄어들고 밀, 보리 짚을 썰어서 뿌려주면 더욱 효과가 있었는데 밀, 보리 농사를 망친 올해는 논 잡초와 씨름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지쳐버린다.


위의 사진들을 보면 벼 사이 사이에 대머리에 머리 한두가닥 있는 것처럼 피가 올라온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참 밉다. 잡아서 뽑아보면 저 조그만 놈이 벌써 뿌리가 실하다. 가을에 피의 열매를 보면 좁쌀 크기의 열매로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는 말의 "피죽"을 쑤어 먹을 수도 있겠다 싶다. 왠만한 것은 뽑는다고 뽑았었는데......몇개 떨어진 피의 씨앗이거나 다른 곳에의 피 씨앗이 물을 따라 흘러들어 왔을 것이다. 그런데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온갖 벌레의 공격도 이겨내고 한 여름을 맞이하는 이 계절에 그 생명을 뽐내는 "피"가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벼의 경우에는 모내기를 하기까지 소금물에 비중을 맞추어 견실한 씨앗을 고르고, 60도가 넘는 물에 소독하고, 찬물에 몇일을 담궈 놓았다가 산소 공급기와 온도 조절기까지 동원하여 고르게 발아시키고 모판에 상토와 함께 넣은 다음에는 치상의 시간을 거쳐 모내기 할 수준으로 물을 주며 키우기까지 실험실을 방불케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놈의 "피"는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심어 놓은 모 옆에서 희희락락 혀를 낼름거린다.

사전을 찾아보면 "피"는 볏과 식물로  제패(稊稗)라고도 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예전에는 구황작물로 키운적도 있는 모양이다. 세계 5대 작물(콩, 옥수수, 밀, 벼, 보리)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조, 기장, 수수, 메밀, 율무와 함께 기본 잡곡으로 불려지는 식물이다. 아내가 호기심에 구입했던 치아씨에 비하면 피의 열매는 큰 편에 속할 정도이다. 

"피 다 잡은 논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는 속담을 겸허하게 받아 피뽑기는 하되 완전히 뽑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것은 씨앗만 수집해 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피의 반란은 초기에 잡아야 하는데 ......물장화 신고 논에 들어가기가 귀찮은 것은 인지상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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