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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와의 인연은 청년으로 "데미안"을 만난 것으로 시작되었다. 삶의 무게와 청춘의 고민으로 버거워 했던 그때에 만난 데미안은 읽지 못한 고전을 하나씩 읽게 했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휠씬 이전이고 PC 통신이 삑하는 모뎀 소리와 함께 삶의 탈출구 역할을 하곤 했으나 명작이 가져다 주는 위안 만큼의 묵직함이 있지는 않았다. 데미안 이후 만난 헤세의 책은 "싯다르타" 였다. 강의 흐름 앞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주인공을 그리는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친구들과 호를 만들어 부를 때 내 이름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얼마전 스승의 날 은사님을 뵈러 가면서 서재에서 고른 책이 바로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찐트" 였다. 기차 여행이나 전철에서의 독서 만큼 좋은 독서 환경도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 도서관의 고요보다 집중력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느낌"일 뿐일 수도 있으나 "페터 카멘찐트" 만큼 책장 넘기는 것이 가벼운 적도 없었던것 같다. 산 하나를 표현하는데도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표현으로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책 또한 시간이 흐른만큼 문고판의 누런 자태를 숨길 수 없었으나 누런 바탕의 검은 글씨가 오히려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페터 카멘찐트"는 헤세의 처녀작으로 읽는 내내 어떻게 독일어를 번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쓰기가 가능할까?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하면 헤세를 본 받아서 좀더 수준있는 글쓰기가 가능할까? 하는 존경어린 팬심을 억누르면서 글을 읽다보니 글 중에 그 해답이 있었다.

적어도 나는 많은 것을 수집했다. 머릿속 뿐만 아니라 여행할 때나 소풍 할 때에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많은 수첩에도 적었다. 2, 3주일마다 한 권의 수첩이 가득 찼다. 거기에다 나는 이 세상에서 눈에 비친 모든 것에 대해 반성도 맥락도 없이 간결하게 메모를 했다. 화가의 스케치북과 같은 것으로서, 짤막한 말로 실제의 것만이 씌어 있었다.......

글중의 주인공 페터는 많은 도보 여행을 했다. 그 여행 과정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추억으로만 아스라히 가끔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기지 않았고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나 선박을 조립하는 것처럼 실제 자신의 발로 디뎠고,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자신의 마음과 몸으로 경험 했던 모든 것을 기록한 메모를 기반으로 세기의 명작을 남겼던 것이었다.

또 한가지 헤세의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그의 내적 열정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깊은 마음에 이었다. 주인공 "페터"는 좋아하는 여인마다 거절 당하거나 거절과 진배 없는 상황에 맞닥드리게 되는데 그 과정 모두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천박함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고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뇌와 폭풍과도 같은 청춘 다움이 있었다. 후반부 어린 아그네스와 곱추 보피와의 만남에서는 솔직한 그의 내면적 고백과 함께 삶에 대한 성찰을 돌아보게 했다. 

결과적으로 "페터 카멘찐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 오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는데 한 사람의 청년기를 단숨에 들은 아쉬움이 묻어날 정도다. 이전에 인상 깊었던 "싯다르타"도 다시 읽고 싶고, 읽지 않은 또다른 헤세의 책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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