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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걷기 여행 계획을("프랑스 파리 걷기 1일차 상세 계획(3)" 참조) 세울 당시만 해도 샹젤리제 거리를 들어서서 개선문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시트로앵 쇼룸이나 디즈니 스토어도 들르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편의점과 같은 모노프리(Monoprix)에서 요기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도 많을 것이고 번화가 한복판의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는 것은 배낭족의 계획에는 등장할 수 없는 아이템이죠. 아침에 공항에서 내린후에 요기한 것이라고는 기내식으로 나누어준 빵과 별도로 구매한 음료수 정도였으니 몸은 지치고 허기지고 ...... 그런데, 아뿔사 모노프리를 찾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리 저리 뻗어 있는 파리의 골목길은 파리 걷기 여행 첫날인 걷기족에게는 마치 미로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것이 "맥도날드"(McDonald's Paris champs elysees) 였습니다. 햄버거가 패티와 빵이 따로 논다는 등의 악평을 본적이 있는지라 후보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곳인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다른 곳의 맥도날드보다 가격도 세다고 하는 군요. 평소에 이런 음식에 친숙하지 않은 탓이라 가격이나 맛에 대한 평가가 적절하지는 않지만 가장 저렴한 햄버거 하나가 우리나라 돈으로 1만원대이니 값싼 패스트 푸드는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주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키오스크로 미리 주문하는 "Easy Order"를 많이들 사용하고 있었는데 카드로 결제를 해야 해서 몇번 시도하다 결국 카운터에서 현금 결제로 주문 했습니다. 맛은 뭐...서울이나 파리나 별 차이 없었습니다.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http://www.paris-arc-de-triomphe.fr/en/)을 둘러보는 것에는 입장료나 관람료가 필요없고 개선문 안으로 들어가서 옥상으로 올라갈 때만 입장료를 지불합니다. 12 유로인데 뮤지엄 패스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샹제리제 거리 쪽이나 반대편의 그헝드 아흐메가(Avenue de la Grande-Armée) 쪽에서 개선문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는 지하도를 통해서 교차로 중앙에 있는 개선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개선문 꼭대기까지는 계단을 통해서 오를 수 있는데 개선문 옥상으로 가는 줄이 너무 길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개선문 위에서 파리의 뷰를 감상하는 목적이라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으셔야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옥상으로 가는 줄을 서지 않고 그냥 영욕의 세월을 견뎠을 개선문을 감상했습니다. 



지하도를 통해 개선문에 도착하면 문 사이로 커다란 프랑스 국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때는 히틀러가 탱크를 타고 이곳을 지났고 삼색기 대신 나치 독일의 국기가 걸렸으니 그 당시 프랑스인들이 느꼈을 치욕감은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치형 천장 또한 허투루 두지 않고 장미 문양을 새겼습니다.



동서남북 네 기둥의 안쪽에는 위의 그림처럼 총 66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 프랑스 혁명과 프랑스 제1제국 당시의 장군들입니다. 개선문의 정식 명칭인 "Arc de triomphe"가 "승리의 아치"인 것처럼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나폴레옹의 의도였지 않나 싶습니다. 1806년에 건설을 지시한 나폴레옹 본인은 개선문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주검으로 지나야 했지만 200여년이 지난 지금 파리의 대표 건축물로 손색이 없습니다.



앙투안 에텍스(Antoine Étex)의 "1815년의 평화, La Paix de 1815". 워털루 전투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끝내는 파리 조약(제2차 파리 조약, Second Treaty of Paris)을 표현한 것입니다. 부조지만 엄청난 규모에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의 전쟁과 지혜의 신인 미네르바를 맨 위에 배치하고 그 아래에 칼을 가진 군인, 농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통해서 일상의 평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로 파란색이 자유, 흰색이 평등, 붉은색이 박애 및 형제애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앙투안 에텍스(Antoine Étex)의 "1814년의 저항, La Résistance de 1814".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당시 탄생한 영국-러시아간 동맹이 러시아 원정 실패이후 유럽 각국의 동맹으로 확대된 제 6차 대프랑스 동맹의 프랑스 공격에 저항한 상황을 표현한 것. 1814년의 저항은 결국 나폴레옹의 엘바섬 유배로 끝이 납니다.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와 늙은 아버지 사이에 서 있는 청년이 인상적입니다. 러시아 원정에서 사망자만 37만명에 이르는 참혹한 결과와 주변국의 압력에 직면한 프랑스를 잘 표현한 듯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미래의 신을 맨 위에 배치한 작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평화" 부조와 개선문의 윗 모서리를 바라봅니다. 뮤지엄 패스도 있었고 개선문 꼭대기에서 방사형의 12개의 길이 별처럼 모이는 에투알(l’Étoile) 광경을 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주말 오후에 줄없이 오르기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개선문의 한 기둥, 한 기둥을 천천히 살펴 봅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천장과 프랑스 국기의 모습.



개선문 아래에는 1차 세계 대전 무명 용사의 무덤(Tomb of the Unknown Soldier of WW1)이 있고 지상에는 꺼지지 않는 불(The eternal flame)이 있습니다. 1923년에 가브리엘 부아시(Gabriel Boissy)라는 기자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매년 1차 대전 종전 기념일 행사를 이곳에서 치른다고 하는 군요. 작은 조형물이지만 자유를 위해 싸운이들을 기리는 이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곳에서는 나이가 지긋하신 군복입은 프랑스 노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복입고 거리로 나오는 어르신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존경심이 들더군요.



꺼지지 않는 불과 바람에 펄럭이는 프랑스 국기를 보고 있자니 이 나라 사람들의 나라 사랑이 부럽기도 합니다. 좌우로 나뉘어 싸우지만 똘레랑스가 있고, 싸우는 가운데서도 나라를 위해서는 하나가 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부럽습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개선문. 개선문 상단에는 남북으로 2개씩 동서로 1개씩 총 6개의 부조가 있는데 위의 그림은 동쪽에 있는 "제마프 전투, 1792, La bataille de Jemmappes" 입니다. 뒤무리에(Dumouries Valencia)가 이끄는 프랑스 혁명군이  정규 오스트리아군을 향해 시도한 첫 번째 공격중 하나로 혁명군의 가능성을 보여준 전투였다고 합니다.



장 피에르 코르토(Jean-Pierre Cortot)의 "1810년의 승리, Le Triomphe de 1810". 바그람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승리로 체결한 쇤브룬(Schönbrunn) 조약을 기념한 조각.



프랑수아 뤼드(François Rude)의 "1792년의 출발, Le Départ de 1792, La Marseillaise".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세워진 제 1ㅣ 공화국을 기념한 작품.



개선문 꼭대기에서 파리 시내를 바라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걷기를 위해서 길을 재촉합니다. 일단 지하도를 통해서 교차로를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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